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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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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 한결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새로운 달을 맞을 때마다 습관처럼 확인해 보는 것이 있습니다. 인디언 달력입니다. 자연 속에서 살았던 인디언들은 과연 새롭게 맞는 달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도시 속에서 자연의 감각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나마 시간의 흐름의 의미를 제대로 일러주는 잣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막 돋아나는 연둣빛을 떠올리게 하는 3월을 맞으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디언 달력을 찾아보았더니 3월의 의미를 여러 가지로 새기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달’(체로키 족), ‘연못에 물이 고이는 달’(퐁카 족), ‘암소가 송아지 낳는 달’(수우 족), ‘개구리의 달’(요마하 족), ‘잎 나는 달’(테와 푸에블로 족) 등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마음에 와닿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아라파호 족)이었습니다. 달력을 보면 3월 안에 있는 절기가 ‘경칩’과 ‘춘분’입니다.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고, 긴 긴 겨울밤을 보내다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고 그러다가는 아이 키가 자라듯 낮의 길이가 길어지는 시간이니, 3월을 두고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이라 부른 것은 적절하다 싶습니다.
3월이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임을 실감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번 겨울 철원을 방문한 일을 계기로 두루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선비 같은 고고함을 지닌 두루미는 멀리서 우리 땅을 찾은 진객처럼 여겨졌습니다.
다시 철원을 찾은 날은 머잖아 먼 길을 떠날 두루미들을 위해 먹을 것을 전하는 날이었습니다. 철원군과 후원자들의 정성으로 마련된 먹이였습니다. 옥수수를 트랙터 앞뒤로 넉넉히 싣고 들로 나가 뿌려주었는데, 그런 정성과 배려가 참으로 따뜻했습니다.
옥수수를 뿌리고 시간이 지나자 그 수를 알 수 없을 만큼의 새들이 날아들었습니다. 두루미도 있었고, 고니도 있었고, 청둥오리들도 있었습니다. 모양도 덩치도 이름도 다른 그들은 다투지 않고 먹이활동을 했습니다.
경계심 때문이었을까요, 먼 곳에 앉았던 두루미들이 마침내 옥수수를 뿌린 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마치 줄을 맞춰 행군하는 군인들처럼 그들은 하나의 줄을 이루어 이동을 했습니다.
이미 두루미의 매력에 빠진 것일까요, 그들이 이 땅을 떠나기 전 한 번이라도 더 그들을 보려는 마음으로 며칠 뒤 다시 찾았지만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상당수의 두루미가 떠나 남아 있는 것은 몇 마리뿐이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그들도 이내 이 땅을 떠나고 말겠지요.
3월은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입니다. 하루하루가 달라집니다. 개구리는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언 땅을 뚫고 파란 싹들이 돋아나고, 빈 가지에서는 연둣빛 이파리가 눈을 뜰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도 같을 날 없는 새로운 의미로 이어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교차로> 20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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