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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서의 한 수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29 추천 수 0 2023.05.17 19:5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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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 신진서의 한 수

 

모처럼 쉬는 날 바둑 중계를 보았습니다. 집안일을 가볍게 거들며 사이사이 바둑을 보았지요. 신진서와 리웨이칭 간 벌어지는 란커배 8강전이었습니다. 어릴 적 형제들과 바둑을 둔 일이 있어 겨우 길 가는 정도를 알뿐 저는 바둑을 잘 모릅니다. 그런데도 바둑을 좋아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돌 하나마다의 가치가 모두 같은 평등함과, 어디에 두어도 되는 자유로움이 좋습니다. 각각의 신분과 신분에 맞는 길이 정해져 있는 장기와는 전혀 다릅니다. 서로가 한 수씩 둠으로 동등한 기회가 부여된다는 점도 좋습니다. 강자가 기회를 독점하는 세상사와 다릅니다. 실리와 세력의 조화도 인상적입니다. 많은 집을 차지하는 이가 이기지만, 실리만 챙기다간 결국은 망합니다.

돌 하나가 판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점도 새롭습니다. 부분은 전체의 일부입니다. 어디에 돌을 놓아도 그 돌은 주변은 물론 판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작은 것에 욕심을 부리면 큰 것을 잃게 됩니다. 전투에서는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무조건 싸우는 것보다는 평화로운 공존이 중요합니다. 내가 내리는 결정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의 의중을 헤아리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바둑을 수담(手談)이라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피 터지게 싸우는 권투나 레슬링 격투기와는 달리 고요히 마주하여 승부를 겨루는 모습도 좋습니다.

해설자의 해설이 판을 이해하는 것의 대부분이지만, 세계 랭킹 1위인 신진서는 초반부터 부진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8집 정도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습니다. 그 정도라면 세계적인 선수들에게는 엄청난 차이, 연승을 이어가던 신진서가 어렵겠다 싶었습니다. 상황이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운지 표정에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판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날카롭지만 불안했습니다. 수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어딘가 허공을 바라보고는 했지만,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수를 더할수록 변화의 가능성도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허망하게 포기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던 순간, 신진서가 둔 수가 있습니다. 평상시라면 두지 않을 수였고, 둔다면 하수들이 둘 법한 수였습니다. 세계 1위가 그런 수를 둔다는 것은 굴욕적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수를 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좋은 수가 아니라는 것은 자명했지만 판을 바꿀 수 있는 길이 달리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치에 맞는 수를 두면 패하는 것은 자명한 일, 무난하게 지는 것이었습니다. 더 먼 길을 더 큰 괴로움으로 가더라도 자명하게 지는 길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 뒤로도 아슬아슬한 선택은 이어졌습니다. 만방으로 불계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을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신진서는 그 모든 순간을 견뎌냈고 끝내 판을 뒤집었습니다. 도무지 불가능하다 여겨졌던 결과를 마침내 얻어냈습니다.

신진서의 승리가 반가웠던 것은 우리나라 선수가 승리를 했다는 것보다는 끝까지 고통을 참고 수모를 견딘 결과가 승리였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다를 것이 없겠구나, 마음에 밑줄 하나 긋는 순간이었습니다. 

<교차로>202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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