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던 꽃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34 추천 수 0 2023.05.24 21:47:18
.........

3b2db892deb215454cf3aeee5fbd953f.jpg

[한희철 목사]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던 꽃

 

시선을 사로잡았던 봄꽃들이 하나둘 지기 시작하며 녹색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겨울을 이겨내기도 했거니와 잎을 잊은 채 눈부신 빛깔의 꽃으로만 피어난 봄꽃들은 감탄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좋아하지도 못했는데 싶은 아쉬움 속에 꽃은 미련도 없이 물러나고, 온통 세상은 푸른빛으로 덮여갑니다.

꽃에 대한 감탄이 꽃 지듯 사라질 즈음, 이때가 자신의 때라는 듯 피어나는 꽃이 있습니다. 나는 본래 주목받는 일에 서툴답니다, 제게 어울리는 자리는 중심보다는 어딘가 구석진 자리지요, 마치 그런 마음으로 피어나는 것 같습니다. 예배당 담벼락을 따라 하얀 찔레꽃이 무리 지어 피었습니다. 온통 가시 투성이인 것이 마음에 걸려 몇 번인가 베어낼까 하다가 왠지 모를 안쓰러움에 손을 멈췄는데, 그러기를 잘했다 싶습니다.

시골에서야 어디서고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지만 도시에서 찔레꽃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 되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 향기를 맡아봅니다. 멀리서도 바람을 타고 코끝을 찌르는 향기로 다가왔던 기억이 선한데, 서울의 찔레꽃엔 향기가 없습니다. 공해와 미세먼지에 시달린 탓은 아닐까, 향기를 잃은 찔레꽃이 안쓰럽습니다.

그래도 고마운 마음으로 꽃을 한 번 쓰다듬는 순간, 생각지 못했던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꽃 이름이 노래의 제목이 된, ‘찔레꽃’이란 노래였습니다. 흥얼흥얼 노래를 불러봅니다. 익숙한 단어와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노랫말이 실타래 풀리듯 입가에 이어지는 것이 신기합니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나직하게 1절을 부르자 화답을 하듯 2절도 떠오릅니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왜 그럴까요, 노래를 부르는 마음이 아릿해집니다. 노래 속에는 어린 자식을 집에 두고 일 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이고, 엄마 오기를 기다리며 배고픔과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허기진 배를 찔레꽃을 따먹으며 달래는 아이의 모습도 보입니다. 요즘의 아이들은 짐작조차 하기 힘든 가난하고 마음 아픈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시절 탓일까요, 올해의 찔레꽃은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온몸이 가시 투성이라 해도 얼마든지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순백의 꽃을 피울 수 있다고, 구석진 자리를 꽃으로 채울 수 있다고 말을 건네는 것 같습니다.

세상살이에 지치다 보면 자신을 무익하다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남에게 짐을 줄 뿐이라 여기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찔레는 가시 투성이의 몸에서 꽃을 피워냅니다. 화려한 꽃 물러간 뒤 구석진 자리에서 꽃을 피웁니다. 가시 투성이라 베려고 했던 마음을 항복하듯 내려놓습니다. 

 

 교차로 2023.5.24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sort 조회 수
11955 이현주 풍랑을 잠재우심 (눅8:22-25) 이현주 2022-10-04 33
11954 이현주 어머니와 형제들(눅8:19-21) 이현주 2022-10-04 28
11953 한희철 나락을 지키지 못하면 나락에 빠진다 한희철 2022-09-28 36
11952 한희철 하찮아 보이지만 소중한 것 한희철 2022-09-22 71
11951 이현주 숨겨놓은 것은 들키게 마련이고(눅8:16-18) 이현주 2022-09-22 41
11950 이현주 비유의 뜻 (눅8:9-15) 이현주 2022-09-22 27
11949 이현주 씨뿌리는 비유 (눅8:4-8) 이현주 2022-09-22 39
11948 이현주 예수 일행을 돕는 여인들 (눅8:1-3) 이현주 2022-09-22 29
11947 이현주 시몬의 집에서 (눅7:36-50) 이현주 2022-09-22 23
11946 이현주 비난을 일삼는 시대(눅7:31-35) 이현주 2022-09-22 31
11945 이현주 세례 요한 (눅7:24-30) 이현주 2022-09-22 26
11944 이현주 요한의 제자들(눅7:18-23) 이현주 2022-09-22 22
11943 이현주 과부의 아들 (눅7:11-17) 이현주 2022-09-22 29
11942 이현주 백부장의 종(눅7:1-10) 이현주 2022-09-22 29
11941 한희철 나비를 잡는 아이처럼 한희철 2022-09-16 47
11940 한희철 따뜻하고 당당하렴 한희철 2022-09-15 49
11939 한희철 달 따러 가자 한희철 2022-09-13 32
11938 한희철 세상이 수도원이지요 한희철 2022-09-12 29
11937 한희철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한희철 2022-09-11 37
11936 한희철 별이 된 강아지똥 힌희철 2022-09-10 30
11935 한희철 욕심쟁이 소장수 한희철 2022-09-07 53
11934 이현주 말씀대로 (눅6:46-49) 이현주 2022-09-07 37
11933 이현주 열매(눅6:43-45) 이현주 2022-09-07 34
11932 이현주 티와 들보 (눅6:39-42) 이현주 2022-09-07 32
11931 이현주 비판(눅6:37-38) 이현주 2022-09-07 27
11930 이현주 원수를 사랑하라 (눅6:27-36) 이현주 2022-09-07 30
11929 이현주 복 있는 사람(눅6:20-26) 이현주 2022-09-07 38
11928 이현주 평지에서 (눅6:17-19) 이현주 2022-09-07 20
11927 이현주 열두 사도(눅6:12-16) 이현주 2022-09-07 17
11926 이현주 안식일에(눅6:6-11) 이현주 2022-09-07 20
11925 이현주 밀 이삭(눅6:1-5 이현주 2022-09-07 18
11924 한희철 바보, 투명함에 이르도록 한희철 2022-09-05 25
11923 한희철 사람을 살리는 사람들 한희철 2022-09-04 47
11922 한희철 바보처럼 주님을 섬기다 간 사람 한희철 2022-09-02 41
11921 한희철 나라도, 나부터 한희철 2022-09-01 33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