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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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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 눈을 감은 선생님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남은 어릴 적 시간은 무엇보다도 배가 고픈 시절이었습니다. 칡과 돼지감자 등 주변에서 먹을 것을 찾아 덜 찬 배를 채우고는 했습니다. 또 한 가지의 헛헛함이 있었습니다.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책도 드문 시절, 이야기가 고팠습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요즘은 이야기의 홍수 시대입니다. 너무 흔해 덜 감동적이다 싶을 만큼 많은 이야기들을 쉽게 접합니다. 드문 이야기를 만나면 이야기의 뜻을 곱씹고 그러다 보면 칡뿌리의 쓴맛이 단맛으로 변하듯 이야기의 뜻이 마음으로 확산되는 즐거움을 누렸던 어릴 적과는 달리, 요즘은 웬만한 이야기에는 눈도 마음도 가지를 않습니다. 홍수가 났을 때일수록 마실 물이 귀하다고, 그런 중에도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나면 반가운 마음은 여전합니다.
최근에 만난 ‘진정한 스승’ 이야기가 그랬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한 노인을 만나 자신을 기억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니라고 하자 젊은이는 자신이 노인의 학생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교사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선생님 때문이었다고, 자신도 선생님처럼 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노인이 궁금해하자 젊은이는 선생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반 친구가 멋진 시계를 차고 학교에 왔는데 그 시계가 너무 갖고 싶었던 그는 친구의 시계를 훔쳤습니다. 잠시 뒤 시계가 없어진 것을 안 친구는 선생님께 그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선생님은 시계를 가져간 학생은 속히 돌려주라고 했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문을 닫은 뒤 반 학생들에게 모두 일어나서 둥그렇게 서라고 했고, 시계를 찾을 때까지 눈을 감고 있으라 했습니다. 차례대로 학생들의 주머니를 뒤지던 선생님은 그의 주머니에서 시계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머지 학생들의 주머니를 다 확인한 뒤 시계를 찾았으니 눈을 뜨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누구의 호주머니에서 시계가 나왔는지를 말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에게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그의 명예를 지켜 주었고,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을 덮어주었습니다. 그날 그는 절대로 나쁜 짓 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시계 사건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선생님을 보며 선생님의 마음을 알았고, 진정한 교육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던 것이었습니다.
젊은이는 오래전 시계 사건을 이야기하며 그 일이 기억나지 않는지를 선생님께 여쭸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시계 사건? 기억하고말고. 내가 모든 학생들의 주머니를 뒤졌던 것도 다 기억하지.”
모든 일을 소상히 기억하면서도 시계를 훔친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선생님이 의아했습니다. 그때 그 마음 안다는 듯 선생님이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자네 생각은 안 나. 나도 눈을 감고 뒤졌거든.”
아, 선생님은 눈을 감은 채 학생들의 호주머니를 뒤졌던 것입니다. 눈을 감은 선생님 앞에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팍팍한 세상, 그럴수록 참 스승이 그립습니다.
<교차로>2023.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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