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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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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520.지경 다지기
집을 지며 지경다지기를 하기로 했다. 사실 터야 포크레인으로 다져 편편하니 무얼 세워도 좋을 만큼 반반해졌고, 포크레인이 오간터에 굳이 따로 터를 다질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굳이 터 다지기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얘길 들으니 터 다지기가 마을에서 사라진지 어언 30여년이 지났다 했다. 동네 누구네가 집을 진다하면 낮엔 제각각 일하고 밤엔 모두들 모여 터를 다져 주었던 지경 다지기!
그 아름다운 전통이 이 땅에서 사라진지 30년이라니, 아쉬운 마음이 터다지기를 고집하게 했다.
집을 같이 짓기로 한 마을 분들께 얘기하자 좋다며 하자고 했다. 돼지를 한 마리 잡았고 음식을 차렸다.
얘길 들은 마을 사람들이 거반 다 올라왔다. 미리 준비해 둔 지경다지기 돌 두 개에다 줄을 엮었다. 박민하 할아버지가 선소리를 하시겠다며 기꺼이 올라오셨다.
땅에 고하고 절을 하고... 터 다지기를 시작할 때의 순서를 기도와 말씀으로 대신했다. 마을 사람들과 빙 둘러서서 이 땅이 거룩한 땅이 되게 해 달라 기도했다.
이어 지경다지기, 선소리를 주는 박민하 할아버지의 선창을 따라 돌을 들어 올리는데 그 큰돌이 번쩍번쩍 춤을 추듯 들렸다간 땅으로 떨어지며 집터를 다지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그리고 신비로웠다.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집터를 다지며 그 터에 세워질 집을 축원하는 이 기막힌 축제라니. 집이란 업자에게 돈을 주어 만들어지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정이 모여 세워지는 공간을 말함이었다.
함께 올라온 놀이방 아이들도 신기한 눈빛으로 터다지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더러더러 어른들 사이에 끼어 함께 줄을 잡아당기기도 했다.
물려받고 물려줘야 할 우리의 당연하고 아름답고 소중한 유산은 그렇게 30여년 만에 불쑥 재현됐을 뿐 또다시 아득하게 묻히고 말았다. (얘기마을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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