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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 아는 이, 내 맘 아뢸 이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17 추천 수 0 2023.07.10 09: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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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 아는 이, 내 맘 아뢸 이
김집사님, 지금쯤 단강마을 앞을 흐르는 강물엔 녹색의 기운이 가득 담겼겠네요. 주변 산 빛을 그대로 담았을 테니 말이지요. 보듬듯 산과 산 사이를 묵묵히 지나며 산의 빛깔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강의 모습은 늘 푸근하고도 넉넉했답니다. 말없이 마을 앞을 흐르며 강이 우리에게 전해주었던 것 중에는 그런 마음도 있었지 싶습니다.
강 이야기를 꺼내니 어느 핸가 집사님이 들려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강둑에 노란 민들레가 앙증맞은 꽃을 피워내던 봄날이었지요. 그날 집사님네는 잎담배를 심는 일이 있어 많은 동네 사람들이 강가 밭에 나와 일을 하고 있었고, 일하는 분들을 만나러 강가로 나갔을 때 집사님은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솥을 걸어 밥을 짓는 모습을 보며 강물로 밥을 안쳤는지가 궁금했던 것은 바로 옆에서 흐르는 강물이 맑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손수레 가득 실어온 부엌살림들, 그나마 물이라도 강에서 길어 쓰면 한결 일이 쉽겠다 싶었지요.
옛날에는 그랬었다고, 장을 담글 때에도 장맛 좋으라 일부러 강물을 떠다 담갔노라고 대답하는 집사님의 말투에는 아쉬움이 배어있었습니다. 보기는 깨끗해보여도 지금은 다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했으니까요. 얘기 끝에 집사님은 툭 한 마디를 했는데, 그 말이 지금껏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다 씨어 먹어두 물은 못 씨어 먹는다 했는데유.”
먹을 게 더러우면 물에 씻어 먹을 수가 있지만, 정작 물이 더러워질 경우 물은 씻어먹을 수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집사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진 말이었지만 제게는 잠언처럼 들렸습니다. 저는 지금도 집사님이 그 때 한 그 말을 환경문제에 관한 고갱이로 간직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 지내던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 들었습니다. 얼굴 가득했던 웃음과 주름, 나무껍질처럼 거칠었지만 더없이 따뜻했던 손끝의 체온, 멀리서도 대번 누군지를 알아볼 수 있었던 걸음새까지 한 분 한 분 지금도 이렇게 눈에 선한데,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 따라 많은 분들이 주님 품으로 돌아가셨네요. 마을 앞을 흐르는 남한강처럼 세월의 강도 연연히 흐르는 것이니까요.
첫 목회지여서 그렇겠지요, 단강에서 보낸 15년의 시간은 제 삶에 고유한 빛깔로 남아 있습니다. 쉬 지워지지 않을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로 말이지요. 시간의 갈피마다에 남아있는 기억들은 여전히 맑은 숨을 쉬고 있답니다. 언제든 마음을 기대고 누일 수 있는, 시간의 둥지처럼 남아 있지요.
단강에서 드리던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안 되는 교우들, 늘 조촐한 모습이었지만 마음이 담긴 예배를 드렸지요. 온 동네가 품앗이로 일을 하던 시절 나 혼자만 시간을 따로 비우기가 어려웠을 때, 종소리를 안타까이 들에서 듣고 드디어 새참 시간 참을 거르고 달려와 잠깐이라도 흙물 풀물 밴 손을 모으던 모습들이 눈에 선합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복된 것임을 깨닫는 귀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안집사님의 기도는 늘 눈물이었지요. ‘다음 주일이 집사님 기도차례입니다’ 알려드리면 이른 새벽 깨어 한 줌씩의 기도를 모으곤 했지요. 그렇게 정성으로 모은 기도를 꼭꼭 마음에 담아 제단에 서지만 이내 앞을 가리는 것이 눈물, 집사님의 기도는 늘 눈물에 젖곤 했습니다.
최집사님의 기도엔 하나님도 뜨끔 하셨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새벽기도를 하는데 그 마른 체구의 집사님이 큰 목소리로 기도를 했지요. “하나님, 해두해두 너무하십니다.” 무슨 일인가, 드리던 기도를 멈추고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지요. 동네 사람이면 누구라도 아는 집사님 집안의 위태하고도 아슬아슬한 삶, 그래도 살아보려고 바동거리며 농사를 지었고, 머잖아 곡식을 거두면 해야 할 일이 줄을 섰는데, 갑자기 느닷없이 내린 서리, 모든 곡식이 타죽고 만 것이었으니, 집사님의 기도는 아예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울어대는 아이의 울음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런 날은 천하의 하나님이라도 덩달아 가슴이 시커멓게 타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언제 주무시는 것인지 꼭두새벽 작실마을에서 어둠을 밟고 내려와 제단 앞에 무릎을 꿇던 할머니들, 다소곳이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지만 이내 마루를 적시던 눈물,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꼭 말을 하지 않아도 눈물 속에 담긴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릴 적 숨바꼭질을 할 때 숨곤 했던 항아리가 세상에서 벗어난 또 하나의 세상이었듯 주님 품이 내겐 항아리였음을 깨닫게 되는, ‘항아리’라는 제목의 동화는 그런 할머니들을 보며 쓴 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머슴도 안 살아봤나, 비도 안 내리시게.’
옛날 어느 머슴이 했다는 말도 단강에서 들었습니다. 하도 일이 고돼서 그랬겠지요. 맘껏 비가 와야 핑계 김에 쉴 틈을 얻을 수 있는 머슴이 마른하늘을 바라보며 내뱉던 탄식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눈에 선한데, 아마도 그럴 때면 또 한 번 하나님이 뜨끔하셨겠다 싶네요.
집사님이 흙을 일구며 곡식을 키우듯 저는 요 며칠 책 한 권을 읽었답니다. <세기의 기도>라는 책이었는데, 언젠가 단강에 들르신 적이 있던 이현주 목사님이 번역하고 엮은 책입니다. 두툼한 책 속엔 믿음의 선배들이 남긴 좋은 기도문이 가득 담겨 있어, 마치 보물이 가득한 창고를 만난 느낌이 들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기도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참 많이 행복하고 감동하였다는, 기도문 한 줄 한 줄에 배어 있는 거룩하고 따스한 기운이 삶의 갈피에 스며드는 느낌이었다는, 거룩한 에너지 보고(寶庫)를 머리맡에 두고 힘들 때나 고마울 때나 외로울 때나 심심할 때 아무데나 펼쳐 읽으면 읽는 그 구절을 통해 그때그때 필요한 위로와 격려와 깨우침의 성스런 에너지가 틀림없이 전달될 것이라는 목사님의 고백이 실감이 되었습니다. 밑줄을 그으며 생각에 잠기던 기도가 적지 않았으니까요.
-주님, 당신이 계셔서 우리가 있습니다. 당신이 아름다우셔서 우리가 아름답습니다.
-제 안에는 어둠이 있지만 당신과 함께, 거기엔 빛이 있습니다.
-좋으신 주님, 제 인생의 배를 저어 아늑한 당신 항구로 이끄소서.
-성결한 물을 제 영혼에 부으시어 저의 모든 말과 행동으로 하여금 당신 사랑의 즐거운 흔적이 되게 하소서.
-주님, 얼마나 많은 즙을 당신은 포도 한 알에서 짜내시는지요.
-제 영혼의 목마름을 적셔줄 하늘 비 한 방울 내려주십시오.
-제가 죽지 못해서 이렇게 죽습니다.
-당신은, 당신 종이 되게 하시려고, 저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주님, 제가 비록 티끌이요 먼지입니다만, 사랑의 사슬로 당신께 비끌어 매인 몸입니다.
-우리 영혼에 당신의 홍수를 부으시어, 우리 안에 있는 죽여야 할 것은 죽이시고 살려야 할 것은 살려주십시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 가슴을 당신께 바치오니, 당신 가슴에 맞추어 꼴을 빚으소서.
-주님, 주님은 한 영혼에게 그가 질 수 있는 만큼보다 더 많은 짐을 지우지 않으십니다.
-주님, 제가 다른 사람들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인간임을 깨닫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을 소유하려 하지 말고 당신한테 소유되게 해주십시오.
-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단순함과 순결함을 유지하게 부디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아리마태아 요셉)는 자기 무덤을 드렸습니다만, 저는 제 가슴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모든 벌거벗음을 덮어주는 옷자락이요, 모든 굶주림을 채워주는 양식입니다.
-한 컵의 교만이 그것을 마시는 자에게 있고, 한 컵의 겸손이 그것을 따라주는 자에게 있습니다.
-때로 당신의 팔이 짧다 싶으면, 우리 믿음과 신뢰를 늘이시어 당신한테 가서 닿게 해주십니다.
-맑고 투명하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다가오는 날에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여주십시오.
-사랑하올 주님, 저에게 인생이라는 책을 제대로 읽도록 그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
-저로 하여금,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시는 당신을 알게 해주십시오.
-과부처럼 제 영혼이 당신을 여의었습니다.
-예수님, 저로 하여금 당신 발을 닦아드리게 해주십시오. 제 안에서 걸으시느라고 당신 발이 더럽혀졌기 때문입니다.
-당신 향한 제 사랑으로 하여금, 어떤 감정의 옷도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가 되게 해주십시오.
-저의 처음 시작인 당신을 공경합니다. 저의 마지막 끝인 당신을 흠모합니다.
-거룩하신 주인님의 겸손한 가슴이여, 당신의 학교에 저를 맡깁니다.
-주님, 당신이 하나로 맺어주신 것들 가운데 누구도, 무엇도, 떨어져나가지 말게 하소서.
-곡식 한 알이 익기까지 얼마나 많은 해와 달들이 있어야 했는지, 당신 홀로 아십니다.
-주님, 제 겨울을 끝내시고 봄을 시작하소서.
-깨어진 병에 값진 포도주를 담지 마세요.
-밤을 낮으로 바꾸시는 당신은 저의 비참한 영혼에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용서하소서. 저를 목적으로 삼고 당신을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도와주소서.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거기가 바로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은 기도를 들려드리면 필시 집사님은 그러실 것 같습니다.
“지가 뭐 기도를 아남유?”
그렇지만 집사님, 제 마음 속에는 집사님의 기도가 남아있습니다. 그 어떤 기도보다도 간절하고 겸손하게 남은 기도, 집사님이 늘 드리시던 기도가 남아있습니다.
“그저 삼시 세끼 밥만 먹으문 인간인 줄 아는 우리들에게, 으특케 살아야 하는 건지를 가르쳐 주옵소서.”
흙을 매만지며 사는 사람이 드릴 수 있는 기도, 흙 같은 마음이어야 바칠 수 있는 기도, 내 실존과 삶에 발을 딛지 못한 채 거룩하신 이 앞에 아직 신을 벗지 못한 채 드려지는 유려하고 화려한 그 어떤 기도보다도 집사님의 기도는 거룩하게 남아있습니다. 아무리 집사님이 손사래를 친다 하여도 말이지요.
내 맘 아는 이, 내 맘 아뢸 이 주님 밖에 없어 때마다 주님을 찾아 눈물로 마음을 바치셨던 단강의 교우들, 그 분들 중에는 분명 집사님이 계시고, 집사님이 드리셨던 그 짧은 기도는 제 기도의 방을 오롯이 밝히는 등불로 남아있습니다.
<기독교사상> ‘책에서 길어올린 풍경’
<세기의 기도>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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