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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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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어쩜 사람이 살아가는 일생이라는 것은, 지게 작대기나 부엌 부지깽이처럼 길쭉한 것이 아니라 맷방석이나 소코뚜레 마냥 둥근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어릴 적 기억이 점점 또렷하게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방금 전의 것을 잊어버리기도 잘 하고 잃어버리기도 잘 하면서 까마득한 옛날 일이 손금 들여다보듯 선하게 떠오르기도 하니,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처음에는 빛이 다 바랜 사진첩의 사진처럼 희미하게 떠올랐던 옛일도 잠시 생각을 가다듬다보면 잃었던 빛깔의 옷을 되찾아 입고 텔레비전 연속극처럼 살아 움직이니, 도대체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 일일수록 더 선명하게 살아오는 것을 보면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간이 스스로의 허리를 처음 쪽으로 휘어 어릴 적 시간에 가까워지는 게 맞겠다 싶습니다.
지금부터 하려고 하는 항아리 이야기만 해도 그렇습니다.
항아리 이야기와 함께 대번 떠오르는 어릴 적 일은 이제껏 살아온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서가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대뜸 다가섭니다.
괜찮다면 눈에 눈물 좀 닦고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항아리 이야기를 하려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군요.
철모르는 어릴 적, 항아리는 숨바꼭질 할 때 내가 즐겨 숨던 곳이었습니다.
뒤뜰 감나무 옆 양지바른 곳에 장독대가 있었습니다.
고만고만한 항아리들이 줄지어 선 장독대 뒤쪽으론 아무 것도 담지 않은 커다란 항아리가 서너 개씩은 있었습니다.
뒤집어 놓은 것도 있었지만 그냥 뚜껑을 씌워 놓은 것도 있었지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전봇대에 얼굴을 대고 눈을 감은 술래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꼭꼭 숨으라고 외치는 사이 나머지 아이들은 세상에서 사라지듯 자기 그림자까지를 거두어 자기만이 아는 곳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조심조심 빈 항아리 속으로 들어가 뚜껑을 닫으면, 거기는 세상에서 벗어난 또 하나의 세상이었습니다.
"못 찾겠다, 꾀꼬리!"
아무리 찾아도 더는 못 찾을 때 술래는 항복하듯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쳤는데, 조심조심 항아리에서 나와서도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는 끝내 가르쳐주지 않았답니다.
그래요, 언젠가 한 번은 숨바꼭질을 하다말고 항아리 속에서 잠이 들어 캄캄한 밤중에야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부모님께 심한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그 때도 차마 항아리 이야기는 하지를 못했답니다.
어릴 적 항아리는 나를 숨길 수 있는 나만의 세상이었습니다.
어릴 적 항아리에 얽힌 일을 벗어나면 시간은 제법 훌쩍 긴 세월을 건너뛰어 내 삶의 중턱쯤에 닿게 됩니다.
결혼을 하게 된 것은 부모님의 소개를 통해서였습니다.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얼굴 한 번 못 본 사람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공부도 할 만큼 했고 집안도 괜찮다고 하여, 소꿉장난하며 키워온 행복을 꿈꾸며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내 소박한 꿈이 깨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허구한 날 남편은 술로 살았습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남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다 쓸데 적은 일이다 싶으면서도 이야길 하다 보니 하게 되었네요.
그렇다고 남편에게 크게 미안한 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아마 남편은 집에서 지낸 시간보다 술집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을 겁니다.
집에서 잔 날보다도 술집에서 잔 날이 더 많았을 거구요.
어찌 어찌 자식들이 셋이나 태어났지만 남편은 아이들을 귀여워하기는커녕 돈 한 푼 벌어다 주는 일 없이 술로만 세월을 보냈습니다.
언제부턴가 술은 매로 이어졌습니다.
술을 먹고 들어오는 날은 닥치는 대로 식구들을 패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온 식구들을 두들겨 팼습니다.
온 식구가 피멍이 들어도 누구한테 하소연 할 데도 없었어요.
아이들은 아버지가 술을 먹고 들어오지 않나 날마다 두려운 마음으로 문밖을 살폈고, 저 멀리 술 먹은 아버지의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무슨 일을 하다가도 정신없이 집밖으로 도망을 치곤 했습니다.
너무 어릴 적부터 아이들에게 집은 따뜻하고 좋은 곳이 아니라 무서운 곳이 되어버렸어요. 지금껏 자식들이 혼자된 어미에게 소식 없이 지내는 것을 보면 그 때 받은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깊고 컸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답니다.
남의 집 일도 해주고 보따리 장사도 하고, 남편 대신 돈을 버느라 정신없이 지냈지만 내 하루는 눈물로 시작해 눈물로 마쳐지곤 했습니다.
예배당을 찾게 된 것은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 눈을 떴을 때 멀리서 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산 너머 마을에 있는 예배당이었어요.
늘 듣던 종소리였지만 그 날은 달랐습니다.
"어서 오라. 어서 오너라."
자꾸만 나를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종소리가 인자한 목소리로 들려왔습니다.
그 날 새벽 나는 끌리듯 종소리를 따라 예배당으로 갔습니다.
예배당에 가니 좋은 게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도 좋았고, 마음껏 울며 기도할 수 있다는 것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새벽마다 예배당을 찾아갔습니다.
"하나님, 아부지.....!"
그러기만 해도 어느새 나는 눈물이 되곤 했습니다.
세상에 무엇 하나 의지할 데 없던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때, 내게는 오래 전에 막혀버린 숨구멍이 다시 터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습니다.
새벽마다 내가 예배당에 가는 것을 알게 된 남편이 가만있질 않았습니다.
입에 담지 못할 욕과 함께 나는 정말 정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두들겨 맞았습니다.
싫었다기보다는 무서웠습니다.
정말 나는 남편이 무서웠습니다.
맞는 일도 이력이 붙으면 익숙해질 것 같은데 남편에겐 그렇질 못했습니다.
새벽마다 종소리는 들려왔고 그 때마다 어서 뛰어가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남편이 집에 있는 날은 어림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이 항아리였습니다.
항아리, 항아리 말입니다.
옷을 따로 갈아입을 것도 없이 뒷간에 가듯 밖으로 나와 항아리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릴 적 숨바꼭질 할 때 숨었던 항아리, 어릴 적 그랬듯이 항아리는 세상에서 나를 숨겨주는 또 하나의 세상이었습니다.
항아리 뚜껑을 닫으면 나 혼자뿐이었습니다.
새벽 두 시도 좋고 세 시도 좋고 나는 잠에서 깨는 대로 항아리 속으로 들어갔고, 항아리 속에서 나는 마음껏 울며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흘린 눈물에 내 몸이 잠기는 것 아닌가 싶을 때쯤 밖으로 나와 새벽밥을 짓곤 했습니다.
항아리 속에 있으면 내가 세상에 나기 전, 꼭 어머니 태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기억은 훌쩍 시간을 건너뜁니다.
남편은 환갑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밥보다는 술로 살다 깊은 병을 얻었습니다.
'고쳐주시든지, 데려가시든지', 어쩌면 남편에 대한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이 떠났을 때에야 그 동안 내가 얼마나 단단한 사슬에 옥죄여 있었는지를 알았습니다.
지난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어떻게 그 모든 것을 견뎠을까, 사람이 모질다 싶기도 합니다.
서리 맞은 호박처럼 몸은 몸대로 망가져 있었습니다.
툭하면 절벽에서 떨어진 것처럼 맞았으니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었습니다.
몸은 그랬지만 언제라도 예배당에 갈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할 만큼 좋았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찾아가는 예배당이지만 눈치 볼 것 없이 맘 놓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전엔 몰랐던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새벽이었습니다.
늘 그랬던 대로 잠에서 깨는 대로 어둔 길을 걸어 예배당을 찾아 무릎을 꿇어 엎드렸는데, 그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폭 감싸 안으며 온 몸을 고루고루 어루만지는 것 같았습니다.
무언지 알 수 없는 따뜻한 손길이었습니다.
그 때 내 몸이 조금씩 조금씩, 그러다가는 불처럼 뜨거워져 갔습니다.
나중에는 뜨거운 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론가 깊이 빠져드는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한없이 편했습니다.
그런데요, 이게 어찌된 일인지요?
한참 후에 눈을 떴을 때, 나는 바람처럼 가벼워져 있었습니다.
몸과 마음 어디 하나 아픈 데가 없어, 마치 내가 갓난아기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압니다.
그 날 나를 안아 주셨던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꼭 끌어안아 고쳐주신 것이지요.
아, 항아리!
하나님은 내 항아리였습니다.
어릴 적 뒤뜰 감나무 옆 양지바른 곳, 숨바꼭질 할 때 나를 숨겼던 항아리처럼, 하나님은 내 삶을 오롯이 품어주신 내 항아리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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