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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강아지똥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15 추천 수 0 2023.07.26 22: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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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강아지똥
결국은 뵙지를 못하고 말았네요. 억지로도 말고 함부로도 말고, 자연스럽게 기회가 주어질 때 인사를 드려야지, 그런 마음 즐거운 꿈으로 가졌고 그런 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결국은 뵙지를 못하고 말았습니다. 예의고 도리라 여겼던 것이 어리석음이기도 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습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마음속엔 친숙함으로 자리 잡았던 분, 늘 부르던 대로 선생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아마도 제가 처음으로 선생님을 만난 것은 1982년 여름이지 싶습니다. 그 때 저는 광주 옆 송정리를 지나 평동이라는 후미진 곳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었지요. 군목이 따로 없던 독립 대대에서 군종병인 제가 해야 했던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일주일에 한 번 광주 시내로 나가 주일 오후에 부대를 방문하여 함께 예배를 드릴 교회를 섭외하는 일이었습니다. 대개는 말씀을 전해주실 목사님이 성가대원들과 함께 부대를 방문하곤 했습니다. 그들의 방문이 부대원들에겐 일주일에 한 번 민간인을 만나는 특별한 시간이 되곤 했답니다.
교회를 섭외하는 일은 오전에 끝날 때가 많았고, 그러면 귀대하기까지의 두어 시간은 자유 시간이 되곤 했습니다. 계림동이었던가요, 기억에 자신이 없습니다만 우연히 시내를 거닐다가 헌책방을 만나게 되었는데 반가운 마음에 책방에 들른 그날 저는 처음으로 ‘강아지똥’이 실린 동화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에 ‘강아지똥’을 읽은 저는 기꺼이 주머니를 털어 책을 샀고, 바로 그 일이 제가 동화를 만나게 된 첫 번째 계기가 되었답니다.
군인과 동화, 아무래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강아지똥’은 제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동화가 삶의 진실을 담을 수 있는 참 좋은 그릇임을 알게 해 주었으니까요. 아이들만 읽는 것인 줄 알았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허구와 환상의 세계인 줄 알았고, 권선징악이라는 틀에 갇힌 뻔한 이야기로 알았던 동화가 그렇게도 좋은 그릇인 줄은 전에는 모르던 일이었습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진실을 담을 수 있다는 점은 고유한 미덕처럼 다가왔습니다.
동화는 50이 넘어서 써야 한다는 선생님 말은 동화에 대한 신뢰를 더욱 갖게 해주었고, 삶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 나이쯤이 되었을 때 동화를 쓸 수 있는 감각을 지니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동화를 읽기 시작했답니다.
시내에 나갈 때마다 충장로에 있는 서점에 들러 열심히 동화책을 읽고는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들러 동화책을 읽고 가는, 그러다간 이따금씩 돈을 모아 동화책을 사는 한 군인을 무척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서점 아가씨의 표정이 지금까지도 어렴풋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권정생님, 그가 행복해지길 바라지 않는다.
그가 행복해지면 하느님이 불행해 지신다.
선생님의 삶과 문학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분은 책의 서문에서 그렇게 썼더군요. 그런 과장과 무심함이 어디 있을까 싶으면서도 선생님을 잘 아는 분이기에, 선생님에 대한 애정이 깊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저도 선생님을 이렇게 소개한 적이 있으니까요.
슬픔이 슬픔을 앗아간다면 몰라도
약함이 약함을 가져간다면 몰라도
더는 빼앗길 것 없는 사람
강아지똥 권정생
그를 대하며 그대에게 말합니다
가난해지자고
단순해지자고
선생님이 쓰신 동화는 동화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이었지만, 그 감동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 것은 선생님의 삶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동화는 결코 선생님의 삶이나 마음과 무관한 것이 아니었기에 더욱 큰 생명력으로 다가오곤 했습니다.
언젠가 배추 값이 폭락하여 배추 한 리어카의 값이 선생님이 쓰시는 원고지 한 장의 고료보다 못하다는 걸 알고는 원고를 쓰지 못했다 하셨지요. 농촌목회를 하던 제게 그런 선생님의 모습은 농촌목회자로서 겪어야했던 이런저런 불편을 결코 과장하거니 미화하거나 투정하지 못하게 해주었습니다.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 어떤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일러주었지요.
감과 관련된 할머니 얘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작년 가을인가? 할머니네 집 뒤란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감이 탐스럽게 열렸나 봐. 그래, 작년에는 감 풍년이었지. 할머니가 손자 시켜 그 중 실한 놈으로 한 가지 꺾어다가 영감 묻힌 무덤에 갖다 두게 했대. 귀신이라도 나와서 맛이나 보라는 속셈이겠지. 영감이 생시에 감을 퍽두 좋아했는가봐. 그런데 그게 전도사님하고 장로님들한테 들켰어. 문제가 됐지. ‘알겠어요? 할머니. 할머니는 우상을 섬겼어요.’ ‘예, 죽을죄를 졌구먼요.’ ‘회개하고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말아요. 귀신을 섬기다니!’ ‘예, 전도사님.’ ‘교인들이 듣는 데서 잘못했다구 그래요.’ ‘... 예.’ 그 할머니한테 난 아직도 한 마디 위로를 못하구 있어.... 게을러서인지.”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무례함과 폭력이 어떤 것인지, 우리의 신앙에서 사랑이 빠져버리면 무엇이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되는지, 그토록 사랑을 강조하는 우리의 신앙 안에 실상 사랑이 빠져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였습니다. 꽃은 되고 감은 안 되는 우리의 이중성과 줏대 없음에 대해서도, 이웃의 삶속에는 종교 이전의 근원적인 마음이 담겨있고 우리에겐 그것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얘기를 떠올리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만, 선생님은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라는 글을 통해 선생님이 지내온 질곡의 시간을 이야기했습니다. 지독한 가난과 죽음을 맞대면한 질병, 어느 날 집안을 위해 어디 1년쯤 나가있다가 오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선생님은 집을 떠나셨습니다. 걸음마다 눈물겨운 일들이 이어졌지요. 그렇게 집을 떠난 선생님은 3개월 남짓 거지 생활을 했다 했습니다.
동화 ‘복사꽃 외딴집’의 소재가 된 상주지방 외딴 집 노부부의 정겨움, 열흘 동안 매일 아침마다 찾아갔지만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깡통에 밥을 꾹꾹 눌러 담아준 점촌 조그만 식당의 아주머니, 가로수 나무 밑에 쓰러져 있을 때 두레박에다 물을 길어 헐레벌떡 달려와 먹여주시던 할머니, 뱃삯이 없다니까 그냥 강을 건네주시던 뱃사공 할아버지..... 선생님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길에서 주운 종잇조각에 몽당연필로 동요를 짓기도 했던 시간이었지만 당시 선생님은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오늘밤엔 꼭 뉘 집에서 삽이나 괭이를 빌려 인적이 드문 산 속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죽어버려야지 하고 별렀다. 실제로 나는 몇 번인가 죽을 수 있는 장소를 보아두기도 했었다.”
그래서일까요, 선생님 동화에 때마다 등장하는 가난하고 못난 것들, 병들고 버림받은 것들은 선생님이 지내온 시간과 무관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은 그들의 아픔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고, 불쌍한 것들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에 덕지덕지 낀 땟국을 정성스레 씻고 또 씻어내 마침내 그들 속에 감추어져 있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겠지요. 당신이 병들었기에 병든 것의 고통을, 버림받았기에 버림받은 것의 슬픔을, 홀로 지냈기에 홀로 지내는 것의 쓸쓸함을 알았고, 그러기에 선생님은 그 모든 것들을 연민과 사랑으로 바라보시며 ‘외로울 만큼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하실 수가 있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연장조차도 빌려 자신을 묻으려 했던 죽음의 구덩이에서 건져 올린 한없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 그 정점에 ‘강아지똥’이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토담집은 현주 꺼다” 했다시던, 선생님과 가까이 지내셨던 이현주 목사님이 이야기한 대로 ‘강아지똥’이야말로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새끼’보다 더 그윽하고 구수한 이야기로, 우리 한국이 세계에 내놓을 만한 격조 높은 동화문학이라는 말에 저도 전적으로 공감을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떠나 보다 많은 이들이 강아지똥이 들려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참새도 병아리도 거들떠보지 않는 강아지똥, 그러나 강아지똥은 ‘하느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다’는 흙덩이의 말을 가슴속에 씨앗처럼 품었고, 마침내 겨울을 지나 봄비에 온몸을 맞아 잘디잘게 부서지고 땅속으로 스며들어가 민들레의 뿌리로 모여 별처럼 빛나는 꽃으로 피어난다는 이야기지요.
군복을 입은 채 허름한 헌책방에 서서 처음으로 ‘강아지똥’을 읽던 오래 전 그 순간이 생각납니다. 마음은 감전되는 듯싶었고, 무엇에 의해서인지는 몰라도 마음이 정화되어 문득 세상이 맑게 보이던 순간이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목회를 하며 교우들과 ‘이야기와 만나는 성서’라는 시간을 가진 적이 몇 차례 있습니다.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남아있는데, 성경공부를 조금 독특하게 한 것이지요. 성경을 펼쳐놓고 그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아닌, ‘이야기와 만나는 성서’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펼치기 전에 먼저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주로 동화였습니다. 이야기를 읽은 뒤 소감을 나누고, 그런 뒤 나눈 이야기에 해당하는 성경말씀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았습니다. 말씀이 우리 생활, 우리 마음과 얼마나 가까운 것인지를 그렇게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첫 시간에 읽은 이야기가 ‘강아지똥’이었는데, 그런 점에서 ‘강아지똥’은 ‘이야기와 만나는 성서’를 가능하게 해 준 안내자였습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교우들은 ‘강아지똥’을 통해 십자가를 떠올리고는 했습니다. 분명 강아지똥은 이 땅에서 만난 십자가의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노자에 나오는 ‘숙능탁이정지서청’(누가 흐려져서 고요함으로써 그것들을 서서히 맑게 하겠느냐)의 그윽한 뜻풀이이기도 했고요.
내내 사모하셨던 주님 품에 안기신 선생님, 선생님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목생 형도 만나셨고, 어머니 아버지도 만나셨겠네요. 눈물이 없다던 하늘나라지만 어쩌면 그 순간엔 모두가 기쁨의 눈물을 닦지 않았을까 싶네요. 선생님이 강아지똥처럼 불쌍히 여겼던 온갖 것들이 영원하신 분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요.
이 땅 구석구석에 배인 아픔과 슬픔을 고스란히 몸에 담아 강아지똥처럼 사신 선생님, 그러나 선생님은 당신의 마음을 녹여 우리들 마음에 별처럼 남으셨습니다. 강아지똥에 담긴 거룩함을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머리를 숙입니다.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선생님은 이 땅의 강아지똥 안에 별처럼 살아계실 것입니다.
<기독교사상> ‘책에서 길어올린 풍경’
<강아지똥>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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