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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리면 사라질 일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26 추천 수 0 2023.07.26 22: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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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b2db892deb215454cf3aeee5fbd953f.jpg[한희철 목사] 어둠이 내리면 사라질 일

 

시간이 주어질 때 정릉천을 걷는 것은 즐거운 습관이 되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저녁을 먹고 길을 나섭니다. 자동차 두 대가 지나가려면 서로 조심을 해야 하는 좁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 다시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면 정릉천 입구를 만납니다. 

 

북한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정릉천이 동네 한복판을 흘러가는 것은 자연이 정릉에 주는 큰 선물입니다. 그 물이 흘러감으로 적어도 이곳이 메마른 땅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릉천을 걸으며 자연의 선물을 즐깁니다. 혼자서 걷는 이들도 있지만, 두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중년부부의 모습도 드물지 않습니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그날도 평일과 같이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는데, 저만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정릉천을 자주 걷다 보니 어떤 모습이 어떤 상황인지를 대개는 짐작을 합니다. <천변풍경>이 있는 다리 아래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경우는 그곳에서 한 가수가 노래를 할 때입니다. 통기타로 부르는 노래가 주변 풍경과 잘 어울립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대개의 경우는 오리 가족을 만났을 때입니다. 정릉천에서 새끼를 깐 어미가 새끼들을 데리고 물 위를 헤엄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병아리만 한 새끼들이 어찌 그리 헤엄을 잘 치는지, 행여나 어미에게서 멀어질까 바지런히 어미를 따라가는 모습 속에는 가족의 의미가 충분히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오리 가족을 보는 일이라면 당연히 시선이 정릉천을 향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오리궁뎅이>라는 식당을 지나 다음 동네로 들어서는 좁다란 길목에 모인 사람들은 정릉천을 등지고 있었습니다. 

 

전혀 짐작이 되질 않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자동차 두 대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서 꼼짝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차가 멈춰 선 곳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로, 두 대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곳입니다. 50여 미터 이어지는 중간쯤에서 마주친 것인데, 운전자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길을 양보하지 않았다고 서로에게 얼굴을 붉히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함부로 어느 쪽 편을 들 수는 없는 일,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서 그 일이 어떻게 마무리가 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마을버스 한 대가 멈춰 섰고, 화가 난 버스기사가 연신 경적을 울렸지만 자동차 두 대는 여전히 꿈쩍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상황은 자존심 싸움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러서는 것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의 잘못과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되고 만 셈이었습니다. 

 

더 지켜보는 대신 걸음을 옮겼습니다. 반환점을 돌아 내려오는 길, 어느새 길엔 땅거미가 깔려 들었습니다. 좀 전에 지나왔던 길을 앞두었을 때, 상황이 궁금했습니다. 차량 행렬이 더 길게 늘어선 것은 아닐까 싶었지요.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누가 양보를 한 것인지 길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어둠이 내리면 사라지고 말 일을 두고 아웅다웅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어둠이 내린 텅 빈 길이 나직하게 일러주는 것 같았습니다. 

 

<교차로> 2023.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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