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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말아야 할 집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56 추천 수 0 2023.08.09 20:5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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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b2db892deb215454cf3aeee5fbd953f.jpg가지 말아야 할 집

 

그리 오래 산 것도 아닌데,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잠깐 사이에 우리나라가 놀랍게 변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불과 60여 년 전, 당시 우리의 삶은 가난했습니다. 흑백사진처럼 남은 그 시간 속엔 덕지덕지 때웠지만 황소바람 숭숭 지나는 창호지처럼 가난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할머니가 벗겨주신 소나무 속껍질 송기를 먹은 기억도 있고, 땅이 다 녹기도 전 언 땅을 파서 찾아낸 돼지감자를 캐서 먹던 기억도 있습니다. 동네 어머니들이 뒷동산에서 무릇을 캐서 큰 솥에 고던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지금도 누룽지를 좋아하는데, 누룽지를 좋아하는 나를 두고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가 있습니다. 혹시 밥을 먹고도 허전한 배를 누룽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먼저 차지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 와락 부끄러움이 밀려듭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궁한 것 중에는 단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흔해빠진 사탕도 그 시절엔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려웠습니다. 금방 녹는 것이 아쉬워서 입안의 사탕을 아껴 먹던 기억이 혀 끝에 남아 있지요.
단 것이 궁할 때는 찔레나 아카시아 꽃을 따서 그 끝을 빨기도 했고, 길가의 풀뿌리를 뽑아 그 끝을 씹기도 했습니다. 단 맛을 맛보려고 칡의 떫고 쓴 맛을 참는 것은 너무나도 흔하고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속담 중에 ‘장 단 집에는 가도 말 단 집에는 가지 마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네 속담 앞에서 생각해 보니 단 것에도 종류가 많구나 싶습니다. 장이 달기도 하고, 말이 달기도 하니 말입니다.
‘말이 달다’는 것은 입으로는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뜻입니다. 기름을 바른 듯 번지르르 말은 매끄럽게 하지만 결국은 무엇 하나 쓸 것이 없는, 오히려 좋지 않은 마음을 숨기는 경우들이 적지가 않습니다. 마음을 숨기려니 말은 더욱 그럴듯해집니다.
내 앞에서 사실과는 상관없는 누군가에 대한 말을 그럴 듯이 하는 이는 결국 내가 없을 때에 나에 관한 험담을 늘어놓을 수 있는 법,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은 대개가 입 단 사람에게서 시작이 됩니다.
말이 단 사람을 경계하기 위해 ‘말 단 집’과 ‘장 단 집’을 비교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같은 말도 그렇게 어울려 쓰니 뜻도 분명해지고 기억하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말도 쓰기에 따라 단 맛이 나는 것이 틀림없다 싶습니다.
‘말 단 집에 장 단 법 없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말 단 집에 장이 곤다’, ‘말 단 집 장맛이 쓰다’ 등 우리 속담에는 장과 말을 연관시키는 것이 적지가 않습니다. 그만큼 장과 말은 일상생활 속에서 늘 대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장 단 집에 가는 거야 즐거운 일이지만 말 단 집에는 가지 말라고, 말만 번지르르 하게 하는 사람은 상종을 하지 말라는데, 지금 나는 어느 집을 들락거리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겠습니다.
<교차로> ‘아름다운 사회 202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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