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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 내가 농사를 못 짓는 이유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3780 추천 수 0 2002.01.05 22: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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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714. 내가 농사를 못 짓는 이유

 

내가 농사를 못짓는 이유를 이제까지는 시간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농사라는 게 제때제때 시간에 맞춰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다른 일과 겹쳐 시간을 놓칠 때가 많으니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은 사실이기도 하지만 실은 핑계에 가깝다. 다른 일과 겹쳐 농사일이 어려우면 미리 하든지, 아니면 다른 일을 마치고 짬을 내어 하든지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는 것이다. 

그런 걸 알면서도 내가 농사를 제대로 못 짓는 이유는 시간 때문이라 생각해 왔다. 이번 봄을 보내면서야 내가 농사를 못 짓는 이유를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이번에도 변관수 할아버지를 통해서였다. 

모내기가 끝난 뒤 할아버지는 몇 날 며칠을 계속해서 논에서 살았다. 꼬부라진 허리로 논을 오가시는 모습은 한 마리 왜가리가 거니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루 종일 논을 오가며 할아버지는 모잇기를 했다. 기계로 심겨진 모를 한 포기 한 포기 살피며 모가 빠진 곳과 허술한 곳에 모를 심어 나갔다. 서재에 가만 앉아 있기도 더운 한낮에도 할아버진 늘논에 있었다. 

바로 그것이었다. 벼를 향한 지극한 사랑! 내게 없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할아버지에게 벼는 자식과 다름없었다. 저 너른 논에 심겨진 벼 중에서 할아버지 손길 한번 눈길 한 번 받지 못한 벼는 한 포기도 없을 것이다. 

곡식은 거름이 아니라 주인 발자국 소릴 듣 고 큰다는 말은 틀림없는 말이다. 내게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없다. 대충 심어놓은 논에 나는 두 번이나 들어가 봤을까.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도 잠시 논둑에 앉아 담배 한 대 태우고 또 논에 들어가 종일 일하는 할아버지. 지순한 사랑으로 막막함과 고통을 넘는, 흉내내기 힘든 마음. 저 할아버지의 지극한 마음이 내게도 있다면 내 삶은 많이도 달라질텐데. (얘기마을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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