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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 유경복 할아버지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5288 추천 수 0 2002.01.05 22: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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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606. 유경복 할아버지

 

떠나신 뒤 내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당신의 이름을 이제야 꺼내 부릅니다. 잔잔한 개구리 울음소리 따라 아카시아 향내 향긋하게 퍼져드는 저녁입니다. 이런 날엔 신작로께에 멍석을 펴고 나와 앉아 밤이 늦도록 마을 분들과 한담을 나누곤 하셨었죠. 또한번 그러기에 좋은 계절이 왔는데 할아버지는 우리 곁에 없습니다.

주름이 굵고 깊었던 얼굴과, 두고 온 고향 함경도 특유의 억양이 담긴 말투, 노인답지 않게 툭툭 던지던 유쾌한 농담, 유쾌하게 웃으시면서도 예의 손으로 입가를 가리시던 모습까지, 당신 떠나신지 어언 반년이 지나지만 당신의 모습은 여전히 선연하게 남아있습니다.

할아버지, 사실 당신을 ‘할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처음이지 싶습니다. 여든의 나이에도 늘 아저씨라 불렀고 그 호칭이 전혀 낯설지 않았던 것은 사람을 대하는 마음의 품이 깊고 편안했기 때문이었다 여겨집니다.

무엇보다 할아버지께 송구한 마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나이를 넘어 마음 깊은 곳에선 ‘친구’같은 생각이 있었지요. 제 마음이 그랬던 건 제가 잘 알고, 할아버지 마음이 그랬던 건 얼핏 얼핏 할아버지 하시는 말씀과 절 대해 주시는 표정에서도 늘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우정을 느낄 수 있다는 드문 즐거움을 저는 할아버지를 통해 고맙게 확인하곤 했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속에 송구함으로 남아있는 것은, 송구함이란 말보다는 ‘아쉬움’이란 말이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마지막 떠나시는 모습 끝내 뵙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아드님 댁으로 가 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전에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어 또다시 회복하여 내려오시겠지었지만 끝내 당신은 그곳 병원에서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성탄절을 앞두고 동방박사들이 그랬듯이 나 또한 먼 길을 찾아가 만날 사람을 만나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제일 먼저 떠올렸던 분이 할아버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참 반가운 만남일거라 마음이 들떴는데, 성탄절 앞둔 바쁜 철에 그럴 시간 어디 있겠냐는 듯 당신은 훌쩍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당신 떠나신 뒤에야 올라가 영정으로 당신을 뵈올 때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지긋한 눈으로 우릴 바라보셨지만 마지막 눈 감으실 때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정말로 마음이 아렸습니다.

안갑순 집사님도 몸이 약해져 이래저래 당신이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사람들을 허공에 떠올리며 마음에 묻고 간 당신, 그 마지막 시간의 아픔이 와락 마음으로 밀려드는 듯 싶었습니다.

두고 온 고향을 찾아가 선조들 무덤 앞에 절하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라 하였던, 언젠가 성탄절을 맞아 하였던 말씀을 기억합니다. 그때까진 단강을 고향 삼아 살겠다하셨던 당신. 

눈 감기 전 정말로 보고 싶었던 얼굴들이 많았을 텐데, 어느 누구도 만나지 못하고 눈 감으셨으니 얼마나 허전했을까. 비록 영정이라 해도 당신 얼굴 쉽게 마주할 수가 없었습니다.

틈틈이 올라와 말동무가 되 주시며 힘 닿는대로 일을 거들어 주시던 인우재, 이따금씩 인우재에 홀로 있을 때면 할아버지 생각이 그리움으로 떠오르곤 합니다.

 

말씀 한마디를 하시더라도 힘이 되는 말씀을 해 주시던 그 고마움을 당신 떠난 자리에서 더욱 크게 느끼게 됩니다.

“난 아무것도 읍지만 그래두 죽는데 걱정 읍서요. 목사님이 어린이 알아서 해 주실라구요.”

내가 당신의 고마운 마음에 이따금 마음을 기댔듯 당신 또한 당신의 막막한 떠남까지를 제게 기대곤 하셨지요. 그런데도 전 당신 떠나시기 전 마땅하고 당연한 일조차 하지 못했으니 두고 두고 원이 됩니다. 

할아버지.

이제 주님 품에 영원히 안기셨으니 살아 생전 그리도 그리워 하시던 북한의 고향 땅 편히 둘러보시지요. 우리에게 자주 들려줬던 고향 자랑을 때로는 주님 앞에 하시기도 하구요.

안갑순 집사님도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이렇게 외로울 수가 없다고 눈물로 탄식하시는 게 마음도 몸 만큼이나 약해졌지 싶습니다.

살아생전 못 만났던 집사님을 머잖아 좋은 나라에서 만나시게 되겠지요. 그런 은총이 있기에 우리 삶이 아주 허전하지만은 않다고 생각됩니다.

할아버지. 남겨주신 속 깊은 우정을 당신 웃는 모습에 담아 마음에 간직합니다.

짧았지만 우리에게 좋은 만남을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얘기마을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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