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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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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645. 촛대
일이 있어 서울로 올라갔다가 두어시간 시간이 남아 청계천을 찾아갔다. 길가에 옛 물건을 늘어놓고 파는 거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한번은 들러 봐야지 했던 참이었다. 물어 물어 찾아간 그 거리는 생각보다 번잡했고 재미도 있었다. 사람들도 많았고 물건들도 많았다. 그래, 저런 것도 있었지 싶은 것들도 있고, 저런 것도 있었나 싶은 것들도 있었다.
그래도 어렵게 들렀는데 물건 한 두개는 사야지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거리를 돌며 구경을 했다. 사람들 속에 섞여 그 긴 거리를 가득 메운 별난 물건들을 구경하는 것은 별난 재미였다.
인우재에서 쓸 생각으로 촛대나 램프 중 적당한 것이 있으면 사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유심히 보다보니 눈에 띄는 촛대가 있었다. 나무로 깎아 만든 촛대였다. 생김새로 보아 우리 것은 아니다 싶으면서도 그렇다고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아닌 촛대가 여러가지 물건 사이로 두 개가 보였다.
값을 물었더니 만원을 달라한다. 어림 짐작한 값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었으면서도 괜히 비싼 것 같다는 흰소리를 했다. 거리 분위기가 충분히 그럴만했고, 그런 얘긴 오히려 ‘즐김’이었다.
“그래요? 그럼 팍 깎아 드릴께요.” 젊은 남자의 대답에 인심이 넘친다.
“그럼 얼마요?” 팍 깎아 준다길래 얼마를 부르나 궁금했는데 “구천구백원 주세요.” 하는 게 아닌가. 웃음이 나는 게 재미있었다.
그러자 “강원도에서 왔는데 좀 더 깎아주죠.”
다시 사정을 했더니 옆에서 물건을 팔던 사람이 거들고 나섰다. “멀리서 오신 손님한테 백원이 뭐여, 인심을 더써!”
“어따, 이런 물건을 어찌 만원도 안 주고 살라해요. 좋아요. 강원도에서 왔다니 크게 인심 쓰지요.”
강원도 어디서 왔느냐고 물은 주인은 다시 인심을 쓰겠다고 했다. 크게 인심을 쓰고 부른 값이 구천오백원이었다.
촛대 두 개를 다 살까 하다가 한 개만 사기로 했다. 주머니 사정도 사정이지만 그게 그 거리에 어울리지 싶었다. 하나 남은 촛대를 누군가도 기분 좋게 사야 하리라.
무릎을 곧추세우고 앉아 그릇을 떠받들고 있는, 떠 받들고 있는 그릇에 촛대를 세울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 얼굴이 거꾸로 조각된, 그러니까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얼굴과 두 손으로 촛대를 떠받치고 있는 그런 모양이었다.
인우재 책상 앞에 촛대를 놓고 이따금 촛불을 켠다. 촛불을 켜면 촛대는 온몸으로 불을 떠받친다.
어둠을 밝히는 건 결국 온몸으로 불을 밝히는 것. 그런 고마운 느낌을 때마다 촛대와 촛불은 전해 준다. (얘기마을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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