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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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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596. 기울만큼 기울어야
봄심방을 하는 날이었다. 아랫작실속을 심방하고 윗작실로 올라갔다. 볕이 따사로운 죽마골엔 어느새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종태 권사님네 예배를 마치고 고개를 넘어 점심을 준비하기로 한 조숙원 성도네로 넘어가는데 안골 인우재 쪽에서 톱질하는 소리가 났다. 엔진톱 소리였다.
고개에 올라서서 안골을 바라보니 인우재 마당에 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최영남 집사님 차였다. 겨우내 제법 손님들이 인우재를 찾으며 나무를 땐지라 열심히 준비해 쌓아뒀던 장작들이 푹 줄어들게 되자 최집사님은 시간이 날 적마다 인우재로 올라와 나무를 하곤 한다. 더없이 고마운 정성이 아닐수 없다.
마침 때가 점심때라 목청껏 집사님을 불렀다. 거리야 상당히 떨어져 있지만 골짝에서 골짝,충분히 들리겠지 싶었는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엔진톱 돌아가는 소리에 다른 소리가 들릴 리 없겠다 싶었다.
조숙원 성도네서 예배를 드리고 최집사님을 부르러 나섰다. 막 죽마골 고샅길을 내려오는데 저 앞에 박민하 할아버지가 가고 있었다.
부인인 이서름 성도도 같이 심방을 하고 있는지라 할아버지께 같이 식사를 하시 자고 청했다. 집에 가서 혼자 잡수시느니 여럿이 같이 드시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됐다시며 굳이굳이 당신집으로 향하셨다. 특별히 완고하신 분도 아니셔서 같이 식사를 하자고 몇 번 더 권했지만 할아버진 굳이 당신 집으로 가셨다.
심방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마침 이서흠 성도와 같이 내려오게 되어 박민하 할아버지 점심 이야기를 했더니 이서흠 성도가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신다. “구차스러워서 그럴거예유, 몸이 늙구 추해지니 이젠 남 모이는데 안 갈라구 그래유”
기울만큼 기울어야, 누추할 만큼 누추하고 허술할 만큼 허술해야 마치는 삶. 우리의 삶이란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얘기마을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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