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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 수재민과 결혼반지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5594 추천 수 0 2002.01.05 2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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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629. 수재민과 결혼반지

 

심술궂은 아이가 단단히 마음을 먹은듯 지리산에서 시작된 물난리는 어디 한 곳 예외없이 무심하다 싶을 정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도대체 언제까지일까, 막막함을 지나 허탈해지기까지 합니다. 

졸지에 집을 잃어버리고, 가족을 잃어버리고, 손때묻은 가재도구를 잃어버리고, 땀으로 키워온 농작물을 잃어버리고 허탈해하는 수재민들의 모습을 젖은 눈으로 바라보곤 합니다. 

가뜩이나 나라의 경제가 어려워 실직의 아픔이 깊고 큰데 느닷없이 닥친 폭우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나마 남아있는 삶의 의지를 여지없이 밟고 지나갑니다. 

제가 사는 단강마을도 강가 마을인지라 물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충주댐에서 그리멀지 않은 하류 지역인지라 댐의 영향을 금방 받는 곳입니다. 아직 다 따내지 못한 잎담배가 고스란히 물에 잠기기도 했고, 잘 갈아놓은 무밭이 거친 자갈밭이 되기도 했습니다. 

논둑 밭둑이 터지고 주저앉고 길이 끊기고,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선 경미 한자라 아예 얘기들을 꺼내지 않으려 합니다. 농사일만 아니라면 김치라도 해가지고 수재지역을 찾아가 빨래라도 해주고 와야 할텐데, 오히려 미안해들 합니다. 

 

몇 년 전이었던가. 수재를 크게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강가 그 너른 밭을 이내 삼킨 물이 신작로를 쉽게 건너 지대가 낮은 집을 삼키고 말았습니다. 불어난 강은 강이 아니라 바다였습니다. 한해 농사를 고스란히 포기 해야 했습니다. 벼가 잘 익던 논에서 팔뚝만한 잉어들을 잡아 올리는 모습들이 여기저기 흔했으니까요. 

걱정을 하며 전화를 했던 수원에 있던 친구가 주변에 있는 분들과 모은 거라며 적지 않은 성금을 보내왔습니다. 성금 이야기를 듣던 나는 두 눈이 뜨거워지고 말았습니다. 강원도 외진 시골 마을이 수재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신혼부부가 그들의 결혼반지를 가지고 왔더랍니다. 쉽게 받을 수가 없어 한동안 만류를 했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분명했습니다. 

“결혼반지야 나중에 다시 하면 되지만, 수재당한 분들은 지금 도와 야하잖아요.” 

라면 한박스씩을 사서 가정별로 나누어 드렸습니다. 라면도 라면이지만 신혼부부의 반지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퍼졌고, 그 훈훈한 눈물겨운 사랑에 우리는 큰 위로와 용기를 얻을수 있었습니다. 

수재를 당한 우리를 위해 결혼반지를 기꺼이 전한 신혼부부들, 그들의 자극한 헌신과 사랑은 지금까지 우리의 가슴에 소중하게 남아있습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결혼반지가 얼마나 많겠습니까만 두 부부가 수재민들을 위해 드린 그 반지만큼 아름다운 반지를 나는 알지 못합니다. (얘기마을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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