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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9. 말 너머의 대화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3288 추천 수 0 2002.01.05 22: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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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659. 말 너머의 대화

 

지난해 마을 외진 곳에 어른들과 함께 옛집을 지었습니다. 흙과 돌과 나무로 지은 허름한 집입니다. 전기도 없어 방바닥에 구들을 놓고 아궁이에서 불을 때야 하는 불편한 집입니다. 

‘인우재’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이웃‘린(隣)’에 어리석을 ‘우(愚)’를 합했으니 풀이하면 ‘어리석음과 가까와지는 집’쯤이 되겠지요.  계산적이고 약삭빠른 마음을 버리고 어리석음을 배우는 일이 더 본질적인 일 아니겠는가 싶어 정해진 이름입니다. 쉽게 옮기면 ‘바보집’이 될 수도 있겠지요. 

시간이 될 때면 인우재로 올라가 조용한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새들의 노래 소리와 바람소리 외엔 더없이 조용한 곳입니다. 목회자가 일에 쫓겨 자기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은 서로에게 불행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목회자와 교우 모두에게 말이죠. 

박종훈씨를 만난 그날도 그랬습니다. 혼자 인우재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고 문을 열었을 때, 뜻밖에도 박종훈씨가 혼자서 있었습니다. 작고 비쩍 마른 체구의 박종훈씨가 문을 열고 나서는 나를 보더니 히죽 웃었습니다. 

 

박종훈씨. 어릴적 부터 입과 귀가 닫힌 삶을 살아왔습니다. 몇 년 전 환갑 잔치를 했으니 한평생을 소리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 온 셈입니다. 궁금한 마음으로 집을 둘러보는 박종훈씨에게 방으로 들어오시라 권했더니 즐거운 표정으로 신을 벗었습니다. 방으로 들어온 박종훈 씨는 그가 사는 작실 마을에 세워진 교회에 나가고 있습니다. 

창가 쪽을 마주하고 기도를 드리는 그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기도를 드리는 박종훈씨의 표정 속엔 진지함이 가득했는데 그 모습이 거룩하게 보였습니다. 뭐라 기도하실까? 소리로부터 단절된 삶을 살다가 몇 년 전부터야 예배당에 나가셨으니 기도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계실까? 문득 궁금한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기도를 마친 박종훈씨와 마루에 앉아 차 한잔을 나눴습니다. 차를 마시며 박종훈씨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론 몸짓으로 나누는 마음의 이야기지요. 

구멍 뚫린 문 창호지를 가리키며 박종훈씨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고. 그러면서 당신 집에 창호지가 많이 있다고도 했고, 아픈 허리를 내보이며 그곳에 기도를 받은 적이 있다고도 했고, 입고 있는 청바지의 길이가 길어 줄여 입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이야기가 몸짓으로 나누는 이야기였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는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박종훈씨의 표정과 몸짓 속엔 이미 말 너머의 마음이 다 담겨 있었습니다. 말없이 나누는 말 너머의 이야기! 그것은 참으로 조용하고도 그윽한 이야기였습니다. 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헤아리는 것으로 통하는 이야기는 서로의 마음을 이야기는 서로의 마음을 더욱 가깝게 했고, 작은 표정속에 담긴 뜻도 소홀히 대하지 않도록 마음을 열어 주었습니다. 

마루에 곱게 내려앉은 늦가을 볕만큼이나 따뜻한 시간이 되어주었습니다. 차를 다 마신 박종훈씨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서둘러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저만치 세워두웠던 지게를 지고 이내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나무를 하러 산에 왔다가 잠시 들른 것이었습니다. 

말없이 배운 기도를 말없이 어찌 드릴까 했던, 기도하는 박종훈씨를 보며 마음속으로 했던 생각은 결국 부질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지요. 말없이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걸요. 그것도 아주 따뜻하고 그윽한 이야기를요. 

우리가 말없이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말 너머에 계신 주님께야 얼마나 당연하고도 마땅한 일이겠습니까? 

말 너머에 계신 주님께 늘 말로써 나아가는데 익숙해져 버린 나 자신의 굳어진 모습을 말없이 돌아서는 박종훈씨를 통해 비로소 보게 된 날이었습니다. (얘기마을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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