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1625. 목사 위에 박사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5598 추천 수 0 2002.01.05 22:03:23
.........

□한희철1625. 목사 위에 박사

 

몇주전 ‘교역자 보건주일’에 관한 글 두 편 쓰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약속을 하며 한 편을 썼는데. 한편은 쓰지 못했다. 괜한 약속을 했나 싶기도 했다. ‘제 얼굴에 침 뱉기’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더러움과 무너짐에서 서너 걸음 떼어 놓으려는 수작 아닌가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망설이다가 쓰기로 한다. 그게 함께 짊어져야 할 멍에라면 져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날 저녁, 목사가 재무 장로를 불렀다. 대개는 사무적인 일뿐. 개인적인(인간적인) 만남이나 교제가 없던 터에 조용히 만나 이야기 하자는 목사의 말은 장로를 긴장시켰다. 

“부탁드릴 일이 있어 만나자고 했습니다.” 목사의 말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무게를 더하려는 마음이 말에 묻어 있었다. 

“무슨 일이신지요?” 장로는 목사의 의중을 헤아릴 길이 없어 조심스러웠다. 

“제 학비를 교회에서 댔으면 해서요.”

목사가 망설임 없이 꺼낸 말은 ‘학비’ 문제였다. 학비! ‘학비’라는 말을 듣는 순간 재무 장로의 머리는 마치 한밤중 정전이라도 된 듯 캄캄해지고 말았다. 

 

연초에 예배를 드리며 담임목사는 공부를 더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사 학위’ 과정을 밟겠다는 얘기였다. 그 얘기를 하며 거듭거듭 강조해서 했던 말이 학비는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교회나 교인들은 절대 신경 쓸 것 없다는 얘기였다. 

하기야 개척한 지 10여년 밖에 안되는 중소도시의 개척교회, 서른 가정이 채 안 되는 교인들, 쉽게 꺼낼 얘기가 아니었다. 

목사가 공부를 더 하겠다는데. ‘목사’ 위에 ‘박사’인지 ‘박사’가 되겠다는데 반대할 교인들은 없었지만, 목사 입에서 나온 ‘박사’ 얘기는 편히 듣기 어려웠다. 

교회 형편도 형편이려니와 목사에게 정말로 중요한 게 학위일까 하는 의구심은 어쩔 수 없었다. 평소에 목사가 학구적인 분위기였다면 아마 생각이 달랐을 터였지만 전혀 그렇질 못한 게 사실이었다. 

재정적인 일로 목사의 목회 활동에 지장을 주는 일이 없게 하기위해 그동안 재무 장로는 교인들과 함께 ‘허리가 휘도록’ 목사 사례비를 정했다. 더 어디서 어떻게 예산을 조정할 수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 온 것이 사실이었다. 교회가 재정적으로 여유만 있다면야 목사가 공부하겠다는데 그 뒷받침 못하겠는가만 남의 건물에 세 들어있는 지금 형편으로서는 엄두를 못 낼 일이었다. 

목사 부인이 학교 교사로 있고, 언젠가 목사가 개인적으로 아파트를 사 세를 놓고 있다는 것도 알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는지라, 어쩔 수 없기도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학비 걱정을 말라는 목사 얘기를 편하게 받아들인 터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학비를 대라니? 재무 장로만 하락하면 굳이 교민들에게 알릴 것도 없지 않겠냐고 목사는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장로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목사님, 교회 돈은 제 개인적인 돈이 아닙니다. 목사님 생각이 그러시면 돌아오는 주일 임원회를 열어 결정을 하시지요.” 그럴게 뭐 있냐고, 그럴거면 뭣하러 장로를 개인적으로 만났겠냐며, 재무 장로 선에서 결정하자고 목사는 계속 채근했다. 

회유인지 협박인지 장로는 어지러웠다. 그렇다고 무조건 “예”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울그락 붉그락, 자신의 목회에 협력하지 않는다고 목사는 장로가 영 못마땅했지만 다음 주일 임원회를 열 수밖에 없었다. 

학비가 6백만원이라는 목사의 말에 교인들은 아무도 아무 말도 못했다. 6백만이라는 금액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 태도에 질린 교우들도 있었다. 

교인들 중에도 실직을 당해 당장 생계가 곤란한 교인들도 몇 가정 있었다. 반이라도 하자, 특별 헌금이라도 하자, 몇몇 힘없고 착한 얘기들이 오가다가 결정된 건 다음과 같았다.

다음 주일이 목회자 보건주일이니 목회자 보건주일 헌금을 힘껏 하고, 거기에 교회 재정을 합해 6백만원을 드리자. 그러나 목사는 그렇게는 안 받겠다고 했다. 보건주일 헌금은 보건주일 헌금이고 학비는 학비지 그런 법이 어딨냐는 것이었다. 

착하기로 소문난 권사가 눈물을 닦으며 한숨을 쉬었다. “목사님이 교인들 형편을 몰라두 너무 모르셔!” 

그 눈물을 두고 누군가는 ‘하느님의 눈물’이라 했다. 

 

구도자의 기상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일깨워 주는 임제 선사의 대표적인 일화가 있다. 그가 교화의 길을 나서고 싶어 고향인 하북지방으로 가려 할 때의 일이다. 

스승 황벽이 그를 불러 물었다. “어디로 가려 하는가?” 임제가 대답했다. “하북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그러자 황벽이 시자를 불러 그들의 대 스승인 백장선사의 선판과 궤안을 가져오라고 일렀다. 선판과 궤안은 일종의 깨달음의 증표다. 

이때 임제가 소리쳤다. “시자야, 불을 가져오너라!” 그 깨달음의 증표를 불태워 버리겠다는 것이다. 증표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었다면 증명서가 필요할 리 없다. 문제는 깨달음 자체에 있는 것이지 형식이 아니다. 

임제의 이러한 드높은 기상을 알고 황벽은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훗날 천하 사람들의 혀끝에 자리 잡고 앉게 되리라.’ 

- 요즘 읽은 어떤 책 중에서

(얘기마을1998)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804 한희철 1650. 시골 인심 한희철 2002-01-05 5592
1803 한희철 1649. 거룩함 한희철 2002-01-05 5592
1802 한희철 1648. 신발 한희철 2002-01-05 5595
1801 한희철 1647. 집짓기 한희철 2002-01-05 5592
1800 한희철 1646. 고구마 이삭줍기 한희철 2002-01-05 5600
1799 한희철 1645. 촛대 한희철 2002-01-05 5594
1798 한희철 1644. 때로 잠 깨어 한희철 2002-01-05 5592
1797 한희철 1643. 교회 팻말 한희철 2002-01-05 5596
1796 한희철 1642. 도깨비풀 한희철 2002-01-05 5593
1795 한희철 1641. 정겨움의 끈 한희철 2002-01-05 5592
1794 한희철 1640. 공연한 일 한희철 2002-01-05 5596
1793 한희철 1639. 두 할머니들 한희철 2002-01-05 5594
1792 한희철 1638. 개발짝나물꽃 한희철 2002-01-05 5611
1791 한희철 1637. 황홀한 빛깔 한희철 2002-01-05 5592
1790 한희철 1636. 작은 시골 예배당 한희철 2002-01-05 5598
1789 한희철 1635. 새벽기도 시간 한희철 2002-01-05 5593
1788 한희철 1634. 속 마음 한희철 2002-01-05 5594
1787 한희철 1633. 참새 목욕탕 한희철 2002-01-05 5593
1786 한희철 1632. 빛나는 쟁기 한희철 2002-01-05 5592
1785 한희철 1631. 여름성경학교 한희철 2002-01-05 5595
1784 한희철 1630. 교회 가셔야지유 한희철 2002-01-05 5592
1783 한희철 1629. 수재민과 결혼반지 한희철 2002-01-05 5594
1782 한희철 1628. 기억의 보물창고 한희철 2002-01-05 5596
1781 한희철 1627. 못생겨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한희철 2002-01-05 5597
1780 한희철 1626. 극복해야 할 주저함 한희철 2002-01-05 5592
» 한희철 1625. 목사 위에 박사 한희철 2002-01-05 5598
1778 한희철 1624. 즐거움 한희철 2002-01-05 5592
1777 한희철 1623. 아궁이에 불 때기 한희철 2002-01-05 5595
1776 한희철 1622. 화분 두어개 한희철 2002-01-05 5593
1775 한희철 1621. 인우재의 아침 한희철 2002-01-05 5594
1774 한희철 1620. 날개라도 있으믄 한희철 2002-01-05 5592
1773 한희철 1619. 교역자 보건주일 한희철 2002-01-05 5643
1772 한희철 1618. 가정의 달 한희철 2002-01-05 5597
1771 한희철 1617. 자전거 한희철 2002-01-05 5592
1770 한희철 1616. 컴퓨터 교육 한희철 2002-01-05 5594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150 세종시 보람1길12 호려울마을2단지 201동 1608호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