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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9. 인우재에서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5287 추천 수 0 2002.01.05 22: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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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569. 인우재에서

 

비가 오는 밤, 인우재에 올라왔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방으로 들어와 촛불을 켠다. 희미하게 타오르는 빛, 그러나 촛불은 정직한 빛이다. 자기를 태운 만큼 타오른다. 

사방 빗소리뿐 조용하다. 물을 끓여 차를 마신다. 차의 따뜻함이 몸과 마음으로 스미듯 떠진다. 비 오는 겨울밤 산중에서 혼자 마시는 차가 넉넉하다. 

아직까지도 혼자 있는 것이 편하지만은 않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는 겨울밤이다. 괜스레 으슥한 마음이 찾아 들기도 한다.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런 마음을 달랜다. 

비 오는 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방에 불도 때야 하고 불을 밝혀야 기껏 촛불을 밝힐 수 밖에 없는 이 산중에 나는 왜 이 밤 혼자 있는가. 따뜻한 방과 환한 전기불과 식구들을 떠나 무엇을 위해 산중에서 시간을 보내는가.

잠깐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가니 어슴프레 윤곽이 남아있던 동쪽 산자락이 비와 함께 피어오른 안개에 쌓여 보이질 않는다. 

아궁이에 다시 장작 몇 개를 집어 던진다. 환한 불씨들, 소나무이기 때문일까. 어쩜 저리도 불씨들이 환할까. 한동안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구경한다.

 

장작은 거센 불길로 타고 불길이 잦아들면 환한 불씨들이 불씨들은 마침내 재가 된다. 남김없이 타는 나무들! 하지만 가만 보니 그냥 재가 되는 게 아니다. 불씨들이 모여 재가 될 뿐, 따로 떨어진 불씨들은 그냥 숯으로 남고 만다. 

불씨들이 서로 어울려 서로를 지키며 바라보며 격려하며 서로기 서로를 재가 되기까지 태우고 있었다. 

함께 사는 삶은 저리도 중요한 것이구나. 서로가 서로의 삶을 따뜻하게 격려할 때, 그때 비로소 남김없이 타는 것이구나.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책을 펼까 하다가 그냥 앉기로 한다. 책 속의 생각을 따르기보다  스스로의 생각을 따르기로 한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내가 지금 꿈꿔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할 뿐, 하나님과 이야기하지 못하며 사는 것은 아닌가. 깊이를 향해 한걸음 내딛기가 이리도 어렵단 말인가. 

희미하게 여겨졌던 촛불이 어느새 환하다. 넉넉하다. 촛불 아래 마음도 서너 뼘 낮아진 듯하다. 아직은 어색하고 불편하지만 이 혼자의 시간에 익숙해지자.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혼자가 되는, 분주함과 어수선함 때문에 듣지 못했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길을 생각하는 (주님도 길을 걷다 말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었지, 걸 위에서!) 

산 아래 개 짖는 소리가 문득 아득하다.

(얘기마을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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