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
[한희철 목사] 부끄러운 패배
운동선수들이 경기에 몰두하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마치 다른 것을 다 잊은 듯 경기에만 집중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감동하게 합니다. 몸과 마음의 한계를 견디면서 굵은 땀을 흘려 훈련을 하는 모습이나, 최선을 다한 결과가 패배로 돌아왔을 때에도 승자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내는 모습은 콧등을 시큰하게 합니다.
판초 곤잘레스라는 테니스 선수를 기억하는지요? 실은 저도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그의 성적이 어떠했는지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가 경기를 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뿐더러, 어느 나라 선수인지조차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를 기억하는 것은 그가 한 한마디 말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경기 중에서 가장 잘했던 경기는 아더 애쉬와 싸워서 졌을 때였다.” 운동선수라면 자신이 낸 최고의 성적이나 극적으로 역전승을 한 경기나 대단한 선수를 이긴 경기를 댈 것 같은데, 그는 자신이 진 경기를 꼽았던 것이지요.
우연히 보게 된 영상이 있습니다. 골프 시합 중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한 선수가 친 공이 하필이면 어린 나무 밑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공과 어린 나무 사이에는 아무런 틈이 없어 바라보는 이들이 보기에도 딱한 일이었습니다. 공을 쳐야 하는 선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공 주위를 돌면서 여러 동작을 취해 보았습니다. 타수 하나에 순위와 상금의 차이가 클 터이니 결정이 쉽지 않았을 터이지요.
마침내 선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는 공 앞에서 몇 번인가 채를 휘둘러보는 연습을 하더니 마침내 힘껏 채를 휘둘렀습니다. 공은 생각보다도 멀리, 그리고 안전한 곳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는 큰 위기를 보기 좋게 탈출을 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은 많이 불편했습니다. 공을 빼내는 데는 성공을 했지만, 결국 어린 나무는 뿌리가 뽑히고 말았습니다. 채를 얼마나 세게 휘두른 것인지 어린 나무는 아예 뿌리가 뽑힌 채 저만치 날아가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나무에게도 감정이 있다면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공이 자기 앞에 왔을 때에야 신기하고 재미있었겠지만, 골프 선수가 채를 들고 나타났을 때 말이지요. 설마 저 무서운 채를 나에게 휘두르지는 않겠지 하는 것도 잠깐, 피하지도 못한 채 무지막지한 채에 맞았을 때는 어땠을까요? 가지가 부러지는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온몸이 뽑힌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저만치 날아가 나뒹굴게 되었을 때, 어린 나무는 아예 정신을 잃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치는 것이 규정에 어긋난 일이 아니라고, 어린 나무야 다시 심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상금의 차이가 한 그루 어린 나무 값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기도 할 것이고요. 하지만 내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최선이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나무뿌리가 뽑히도록 채를 휘두르는 대신, 그냥 벌타를 받아들였으면 어땠을까요? 순위와 상금 액수는 달라졌겠지만, 그보다 소중한 것을 얻지 않았을까요? 당사자가 아니라고 너무 쉽게 말한다 타박할 수 있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을까 아쉬움은 큽니다.
<교차로>2024.2.21
|
|
|
|
|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