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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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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듯함과 부끄러움
뿌듯함과 부끄러움
해마다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면 비슷한 반응들이 이어졌다. 그 작가가 누구지, 누구기에 노벨상을 받았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인터넷으로 작가를 검색하고, 작가나 작품에 대한 설명을 유심히 살폈다. 수상자의 작품을 읽고 남모르는 애정을 가지고 있었을 때의 뿌듯함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관심은 수상자에 제한되지 않았다. 그의 가정사, 아픔과 상처, 그가 사는 나라의 문화와 역사 등 작가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들이 관심의 대상이 되곤 했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책방 좌대에는 수상자의 작품들이 진열되었다.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여서. 아직 번역된 책이 없을 때면 출판사들이 얼마나 분주했을까? 독점 계약권을 확보하려고, 서둘러 번역을 하려고.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우리는 지구상에 사는 누군가 한 사람을 새롭게 만나고는 했다. 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동시대를 살고 있었구나, 반갑고 고맙고 든든했다.
한글날을 맞아 ‘우리에게 한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는 성서일과 묵상을 나눈 다음날, 오래 전 ‘책에서 길어올린 풍경’에 썼던 ‘한 고집, 한 우물 파기’라는 글을 나눈 다음날, 고집스레 한글로만 쓰되 한 글자만 틀려도 다시 써야 했으니 기도하는 시간과 진배없었을 <먹만 남다>는 홍순관 서예전에 다녀온 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잠들기 직전 들었다. 왜 그럴까, 덮고 있는 이불이 솜구름 같았다. 시간이 걸려 번역본으로 읽어야 했을 책을 몇 권 우리말로 읽었다는 것이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뿌듯함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부끄러움도 밀려왔다. 이 땅에는 채 치유되지 못한 큰 아픔과 상처가 있다. 여전히 진행형인, 가리고 싶은 수치가 있다. 언어와 문화와 역사가 다른 세계인들의 관심이 이 땅을 향할 터,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었던 하늘이 더 커졌다. 그러니 어찌 뿌듯함만 있겠는가만, 그래도, 그래도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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