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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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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기도(1) 다시 길을 나서며
다시 한 번 길을 나선다. 처음 걸을 때 <걷는 기도>라 이름을 붙였으니, 두 번째 <걷는 기도>인 셈이다. 2017년 DMZ를 따라 열하루 혼자 걸은 적이 있다. 강원도 고성 명파초등학교에서 출발하여 파주 임진각까지 걸었다. 명파초등학교를 선택한 것은 그곳이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학교였기 때문이다. 어서 속히 이 땅에 평화 임하여 명파초등학교가 최북단이 아니라 정중앙에 자리 잡은 학교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명파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기도를 드리고 길을 떠났었다.
이번에도 몇 가지 기도 제목을 정했다. 첫째는 <루터를 만나다>였다. 정릉감리교회는 창립 70주년을 맞으며 ‘열두 개의 돌’이라는 주제로 기념행사를 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요단강을 건널 때 강에서 돌 열두 개를 택하여 길갈에 쌓게 한다. 후손들이 돌의 의미를 물으면 강을 건널 때의 일들을 들려주라는 뜻이었다. 70년의 걸음을 멈추고 열두 개의 의미를 택하고 싶었다.
그렇게 정한 열두 개의 돌 중의 하나가 <루터를 만나다>였다. 청년들에게 종교개혁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성한 곳이 없는 이 땅, 심하면 심했지 교회라고 예외가 아니다.
“침몰하고 있는 배를 구명정일 거라고 철석같이 믿으면서
철썩, 안심하고 가라앉는 종교를 보았느냐”
반칠환 시인의 ‘우리들의 타이타닉’이라는 제목의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지하철 안에서 이 시를 읽으며 얼굴이 화끈거려 얼른 시집을 덮었던 기억이 새롭다. 시의 부제가 ‘속도에 대한 명상’이었으니 시인은 안심하고 가라앉는 종교의 겉모습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가라앉는 속도까지도 바라보는 것이었다.
두 번째 기도제목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이다. 어떤 교우는 전광훈 목사처럼 용기 있게 설교하지 않는다고 교회를 떠났고, 어떤 교우는 계엄상황을 악이라 선언하지 않는다며 예배 출석을 삼가고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우들, 그것을 떠나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 제대로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힘들었다. 이 땅에서 사는 한 사람으로서 몸으로 기도해야지 싶었다.
세 번째는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을 위하여>였다. 주변을 둘러보면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이 참으로 많다. <걷는 기도>를 통해 기도하면 마음이 더 간절하지 않을까 싶었다. 기도 제목을 들은 누군가는 자신의 아내를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다.
또 하나 슬며시 품은 기도 제목이 있었다. 지금 섬기고 있는 정릉교회를 위한 기도였다. 그만한 길을 나서 바라보면 교회가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관행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 우리를 잠식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무기력함 등을 생각하고 싶었다.
고난주간을 앞두고 있으니 정할 수 있는 시간은 닷새, 닷새 동안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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