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시골편지] 부러워라 눈사람 아저씨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2074 추천 수 0 2009.01.13 21:30:47
.........
덤불 속에서 꿩 한 쌍, 그러니까 수꿩인 장끼와 암꿩인 까투리가 튀어나와 꽥 꽤액 죽는 소리를 하고들 도망친다. 내가 뭐 꿩 사냥을 나온 것도 아닌데 무안하게시리. 밤새 온기를 나누며 짜릿하였덤불 속에서 꿩 한 쌍, 그러니까 수꿩인 장끼와 암꿩인 까투리가 튀어나와 꽥 꽤액 죽는 소리를 하고들 도망친다. 내가 뭐 꿩 사냥을 나온 것도 아닌데 무안하게시리. 밤새 온기를 나누며 짜릿하였을 둘의 단칸방을 기웃거려 보았다. 새들도 연말연시라고 살붙이 피붙이들과 함께 보내는구나. 뒷산 고갯마루에 앉아 한숨 한방 뱉어내고, 내려오는 길. 멀리서 보니까 부녀회장님이 소슬문을 두드리고 계셨다. 내가 없는 거 같으니까 우편함에다 뭘 꽂아두고 가신다. 농협에서 집집마다 돌리는 새해 달력. 조합원도 아닌데 같은 마을에 산다고 해마다 챙겨주신다. 내가 이쪽 산골로 이사를 온 지도 벌써 5년째. 밥하고 빨래하고 야무지게 버텨온 세월, 그 세월 참 빠르기도 하지. 이러다가 금세 어르신들 뒤를 이어 독거노인으로 등극하게 될 날도 머지않겠군.

알맞은 곳 찾아 달력을 걸고 새해 첫 달 첫 주 어느 날, 쳇 베이커의 노래 ‘마이 퍼니 발렌타인’을 숨죽여 듣고 있을 내 생일에다가 동그라미를 크게 치고…. 순간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서 ‘엄마아아, 아빠아아’ 애들 마냥 길게 불러보고…. 오늘 같은 특별한 날엔 간만에 고등어 반찬. 물고기 중에서 가장 학벌이 높다는 고등어, 그래서 나 같은 멍청이에게 좋다는 고등어를 구워 먹어야겠다. 냉동실에 아껴둔 고등어 한 토막 꺼내어 녹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달력을 한 장 두 장 살펴본다. 이 많은 날을 다 견디며 살아야 하나? 무슨 밥벌이로 살아낼까? 참말 거시기한 생각이 들어 달력 보기 중단.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싸라기눈이 내리기 시작하는군. 내일 아침엔 눈사람 아저씨가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그 아저씨 되게 보고 싶었는데…. 새해 첫날 눈사람 아저씨랑 둘이 보내도 쓸쓸하진 않겠다. 권총을 찬 허리띠도 없고, 돈지갑을 넣을 주머니도 없이 구름처럼 바람처럼 평화로운 눈사람 아저씨. 난 무소유와 대자유의 겨울 나그네 눈사람 아저씨가 항상 부럽기만 하더라.

<목사·시인 임의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6810 이현주 고양이 이현주 2012-06-25 2084
6809 이현주 보고 싶은데 보이지 않고 이현주 2012-11-11 2083
6808 김남준 자녀의 영혼을 보라 김남준 2004-12-03 2082
6807 이현주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려라 이현주 2004-10-10 2082
6806 이현주 어려운 일을 그 쉬운 데서 꾀하고 이현주 2004-10-10 2081
6805 이현주 해불양수(海不讓水)라 이현주 2013-01-06 2080
6804 이현주 들꽃은 햇빛을 찾아 옮겨 다니지 않는다 이현주 2012-09-16 2080
6803 이현주 놔두고 즐기자 이현주 2012-07-22 2080
6802 필로칼리아 혼합 최용우 2012-07-03 2080
6801 이현주 잘 이기는 자는 적과 맞붙지 아니하고 이현주 2004-10-19 2079
6800 이현주 도기(陶器) 이현주 2001-12-29 2079
6799 임의진 [시골편지] 최 게바라와 야콘 농사 file 임의진 2011-09-04 2078
6798 이해인 당신을 위해서임을 잊지 말아요 이해인 2004-09-01 2078
6797 이현주 내가 어렸을 때에는 이현주 2012-08-20 2077
6796 이현주 미천한 이 몸 거두어 제자로 삼으신 이현주 2012-07-07 2077
6795 이현주 호박씨. 호박 덩쿨손 [1] 이현주 2002-03-14 2077
6794 임의진 [시골편지] 모차르트 file 임의진 2010-08-22 2076
6793 이현주 라디오 스타 이현주 2012-10-08 2075
6792 필로칼리아 죄는 타오르는 불 최용우 2012-07-15 2074
» 임의진 [시골편지] 부러워라 눈사람 아저씨 임의진 2009-01-13 2074
6790 김남준 미소에 능하라 김남준 2004-12-10 2074
6789 이해인 환자의 편지 이해인 2004-09-10 2073
6788 이현주 자기가 지금 누구를 아무 이유 없이 이현주 2012-10-21 2073
6787 김남준 예수께서 오신 두 가지 이유 김남준 2004-12-23 2073
6786 이현주 죽어야 너를 볼 수 있다면 이현주 2012-07-07 2072
6785 이현주 어수룩하게 다스리면 백성이 순하고 이현주 2004-10-05 2072
6784 홍승표 [함석헌] 그사람을 가졌는가 홍승표 2004-02-13 2072
6783 이현주 가치관과 인생관이 저마다 다른 세상 이현주 2012-12-10 2071
6782 이현주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현주 2008-02-09 2071
6781 김남준 서로 보고 웃지요 김남준 2004-12-10 2071
6780 필로칼리아 말로 최용우 2012-10-05 2070
6779 필로칼리아 칭찬 최용우 2012-07-25 2070
6778 김남준 경고 김남준 2004-12-10 2070
6777 김남준 미완성이기에 아름답습니다. 김남준 2004-12-15 2069
6776 이해인 죽은 친구의 방문 이해인 2004-09-10 2068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