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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 자물쇠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2423 추천 수 0 2009.03.04 2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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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능참봉을 하니까 한 달에 거동이 스물아홉번이라더니, 신년맞이로 만날 대처에 나가 놀았다. 친구 줄 것은 없어도 도둑 줄 것은 있는 살림인지라 외출할 땐 자물쇠로 문들을 걸어 잠그고 나가는데, 대문이 활짝 열려있는 게 아닌가. 삽도 없고 곡괭이도 사라지고 아버지 때부터 오래 쓰던 리어카도 없고 철제 사다리도 보이지 않고…. 철이란 철은 모두 없어졌다. 고물상 아저씨가 잠시 빌려간(?) 걸까. 눈밭에 낯선 신발자국이 보이는데, 내가 형사 콜롬보도 아니고 셜록 홈스도 아니니 그만 기분 한번 나쁜 것으로 끝. 하는 일 없이 놀고먹는 우리 개들은 느긋하게 잠을 잔 뽀얀 얼굴을 하고 염치도 없이 꼬리를 친다. 작년 여름엔 동네 통통한 개들이 모조리 사라진 일이 있었는데, 그나마 보신탕집 사냥꾼은 아니어서 천만 다행.

현관문은 그대로. 안살림까지는 넘보지 않았더라. 그러나 나는 하늘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이번 기회에 살림 정리를 좀 했다. 욱시글득시글 모여 사는 집도 아닌, 달랑 혼자 사는 집에 웬 물건이 이다지도 많은지. 어떤 책에 보니 화가 마르셀 뒤샹은 여행을 떠날 때 짐 가방은 절대 사절, 추울까봐 두 겹으로 껴입은 속옷, 윗옷 주머니엔 칫솔 하나 꽂고서 가볍게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사는 집은 어찌나 허름하고 비좁은지 연인이 찾아갔다가 기절초풍하기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오는 수도자 조시마 신부는, 가구라곤 찾아보기 힘든 골방에서 “사람들은 엄청난 양의 물건을 쌓아놓는데 성공했지만 행복은 쌓는데 실패했더라”고 일갈한다. 그가 살았다는 수도원에는 작은 침대, 양초, 그리고 구석에 독서탁자와 십자성상, 성경책이 전부였다고. 이쯤 되어 생각해보면 도둑이 문제가 아니라, 도둑맞을 짓을 자처한 사람 쪽이 문제인 듯싶다. 자물쇠 없이 살고픈데, 그건 내가 먼저 빈털터리 수행자로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걸 알기라도 했으니 중간은 이제 되겠다.

<임의진|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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