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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 빨래하는 남자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2667 추천 수 0 2009.06.07 19: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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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강 짜서 널어야재 그라고 매가리없이 짜불어가꼬는 물기가 어디 빠지거쏘잉. 빼다구가 뿌러질 맹큼 아조 콱 비틀어 짜불어야재 봄바람에 짝짝 마르재.” 연중행사로 하는 이불 빨래 중이었는데, 뒷산 마늘밭에서 냉이 캐던 국씨 아짐이 보다 못해 내려와 거들어주셨다. 세탁기가 있기는 하나 솜이불은 발로 밟아 빨아야 한다는 살아생전 어머니 말씀을 받잡고 그리 한 것이다. 어머니가 계셨으면 누구 대머리보다 반들반들 빛날 살림살이, 엄니 잃고 마흔 넘은 병풍산 호랑이 한 마리는 날파리 사냥이나 하면서 밥하고 빨래하며 소꿉놀이하듯 살아간다. 쪽 팔리는 건, 오늘처럼 산중 여우들까지 한심하게 여기며 쯧쯧-거린다는 것.

일상생활 중에 가장 행복한 순간을 대라면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볕에 잘 마른 빨래를 가지런히 갤 때라고 말해주리라. 햇볕 향기가 밴 이불을 덮고 잠을 잘 때의 그 뿌듯함이라니. 누구는 만기 적금 탄 날 빳빳한 지폐를 만질 때라고 할지도 모르지. 심장이 벌렁벌렁 해질 행운이나 복권 당첨 따위 람보를 피해가는 총알처럼 쓩쓩 딴 데로 새나가기 바쁘고, 벼락부자들이 생겨나는 로또는 ‘너 또’ 샀냐일 뿐이고, 날마다 손 벌리는 자녀들과 더 이상 쓸 게 없이 맹탕 백지인 가계부. 그렇다고 날마다 괴로워하면 암이나 걸리지 않겠수? 오늘은 봄볕이 어느 날보다도 좋으니, 동무야! 이불 빨래나 하자구. 뽀송뽀송 잘 마른 이불 덮고, 골치 아픈 일들 잠시 장롱에다 집어넣고 잠이나 한 숨 때리고 나면, 다시 기운이 돋을지도 몰라, 새살이 돋을지도 몰라. 나는 잘 마른 이불에 누워 잠 한숨 달게 자면 한결 기분이 나아지더라만 그대는 또 모르지 뭐. 눅눅하고 쿰쿰한 세상살이 응급치료법, 뭐 특별할 것 없이 비슷비슷한 거 아닌감?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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