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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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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등 켜진 콧잔등,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집 두고도 논일은 줄지 않으니 한숨이 깊다. 별쭝맞은 돌풍은 뼈품 팔며 고된 일하는 남정네 짚모자를 날린다. 쉬어가며 하자는 소리. 명성황후 못잖은 부녀회장님 출타했다 돌아오듯 장한 탈곡기 대자로 궁둥이 흔들며 집으로 돌아온다. 나락 물결도 점차 자지러드는 늦가을 어간. 대추나무와 감나무, 열매를 거반 털려서 새들의 만찬이 조촐하겠다. 굴뚝 연기들 모두 승천하시고 숭늉들 마실 시간. 저녁은 싸늘하고, 밤은 어제보다 춥겠구나. 작년에 땔감을 넉넉하게 해두어서 첫눈까지는 버틸 수 있을 터. 참나무 쪼개서 난롯불에 던지는데, 탈탈탈 경운기소리 늦은 도착을 알린다. 아낙네들 내리는갑다. 허위허위 골목으로 사라지는 아낙네들. 담양들녘에 산재한 하우스에서 품 팔고 늦은 밥상에 노곤들 하시겠다.
물 말아 김치 얹어 뚝딱 먹고 나면 아재랑 몇 마디 도란거리지도 못하고 먹잠에 빠지고 말리라. 삭신 아프지 않은 데 없어도, 자식들한테 짐 될 수 없다고, 잠꼬대조차 이를 앙당 문다. 이 나라 이 강산 아낙네들 그렇게 깊이 잠드는 가을밤. 어둡지 않으면 이때껏 일하고도 남을 그이들. 캄캄해서 고맙다. 눈 어두워서 고맙다.
섬마섬마 걷는다는 손자가 꿈에서 나와 절로 웃음이 번지는 얼굴. 옆에서 뉴스 보다말고 담배 꼬나물던 아재가 자다말고 히죽거리는 각시를 보더니 “인자 미쳐부렀능갑네” 한다. 그러다 짠해서 다독다독 이불 덮어주고, 수세미마냥 깔깔한 손 잡아주는 밤. 캄캄한데 살아줘서 고맙다. 나 같은 놈한테 눈 어두워서 고맙다, 그런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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