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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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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 그늘에 놓인 대나무 평상. 목침을 베고 누워 부채질을 해가면서(예쁜 처자가 해준다면 입꼬리가 귀 끝에 걸릴 텐데) 책읽기 딱 좋은 계절이렷다. 무더운 날 그러잖아도 머리통이 열 받아 있는데 두개골이 쪼개질 만큼 난해한 철학책이나 지렁이 원서를 굳이 읽어야 할 필요는 없겠다. 꼭 어렵고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는 사람 치고 정신 온전한 사람 보았던가. 잘 익은 노지수박 한 통 옆에 끼고서, 술술 잘도 읽히는 만화책을 보다보면 육신과 정신에 아마 충분한 보양식이 될 거다. 나는 여태 덜 자랐는지 만화책을 좋아해서 시방도 서점에 갔다 하면 만화 코너로 달려가 간이 통게통게해 가지고 서성거린다.
<나는 공산주의자다>라는 만화책 두 권을 고른 날도 그랬다. 비전향 장기수 허영철 할아버지 이야기. 똘이 장군, 마루치 아라치를 비롯한 반공만화로 중무장 세뇌시키려던 군사정권의 관계자들에겐 무척 죄송한 말씀이지만 나는, 사랑이나 용서, 평화, 자유 이런 말이 곱빼기 자장으로 좋으니 어떡하란 말이냐.
그런데 이 만화책, 이렇게 슬퍼도 돼? 36년 동안 감옥에서 살다나온 장기수 할아버지의 옥중 수기, 차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더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지독한 편견과 증오의 땅에서 이 만화책 하나 남기시려고 할아버지는 북녘 송환도 마다한 채 고향산천 부안 땅에 남으셨던가. 책방에서 구루미 유키모리의 <만화로 보는 불교> 전집까지 발견했으니 삼서삼복의 더위가 전혀 두렵지 않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책인 에드몽 보두앵의 <여행>과 신학생 시절부터 책장이 닳도록 탐독해온 코르테스 <해방돌이 예수>도 연중행사인 만큼 꺼내어 재독하련다. 대나무 평상에 조르라니 이렇게 동네 만화방을 차려보는 거다.
ⓒ 임의진 목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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