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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

이해인 이해인............... 조회 수 2619 추천 수 0 2010.11.19 08:15:54
.........

1001-1010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

 

1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 들려옵니다. 나의 자그만 안뜰에 남 몰래 돋아나는 향기로운 풀잎. 당신의 말씀-그 말씀이 아니시면 어떻게 이 먼 바다를 저어 갈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직은 메마른 나무의 둘레. 나의 둘레. 꽃도 피지 않고 뜨거울 줄 모르는 미지근한 체온. 비록 긴 시간이 걸려도 꽃은 피워야겠습니다. 비 온 뒤의 햇살같이 안으로 스며드는 당신의 음성.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 가까이 들려옵니다.
빛나는 새 아침을 맞기 위하여 밤은 오래도록 어두워야 한다고-
아직도 잠시 빛이 있을 동안에 나는
끔찍이 이 세월을 아껴 써야 한다고-
마음이 가난치 못함은 하나의 서러움-
보화가 있는 곳에 마음 함께 있다고-
아직도 가득차 있는 나의 잔을 보다
아낌없이 비워야 한다고-
....
네 그래요.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 분명히 들려옵니다. 

 

2..
죄는 많으며도 뉘우침조차 사무쳐 오지 않는 불모의 사막. 돌같이 차가와진 타성은 나의 기도마저 그늘 속에 잠재우고 다신 돌이킬 수 없는 오늘을 그대로 삼키려는가.
어느새 뿌리를 내린 이기의 습관은 소중한 나의 자유를 노예로 만들었더니 -시간마다 오열하여 가슴을 뜯는 소리.
종을 치세요, 종을치세요.한 방울의 겸허한 눈물로 답답한 이 가슴을 적실 때까지 용기를 내어 울자. 사막의 뜨거운 모래밭을 걷기로 하자.

 

3.
창문을 열면 수면에 잠긴 채로 오색 영롱한 항구의 불빛.
오늘 또 하루 날은 저물었습니다. 주여.
감은 눈 안으로 일기를 젖히면, 파아란 하늘 밑에서 표백된 빨래를 쥐어짜는 어머니 가슴같이 희디 힌 기쁨이 있었습니다.
연기처럼 가볍게 오르고 싶으며도 먼지투성이로 주저앉아 버린 초라한 실망이 있었습니다. 빼았기고 싶잖은 차가운 의지로 당신을 위해 마음 도사리며 옷깃 여민 어려움- 어찌 나에게 이런 행복한 아픔을 주십니까.
주여, 나는 무었이어야 할까요. 자신을 잊어버리기엔 아직 너무나도 고된 내가 진리이신 당신 앞에 할말이 무었일까요. 한줌에 햇살을 움켜쥔채 그래도 나는 드릴 얘기가 있었습니다. 겹겹이 나를 닫아 버린 어둠 속을 헤치고 당신 아닌 그 누구를 찾아야 되겠습니까.
섭리 이신 당신이여, 나의 자유는 당신의 것입니다. 하늘 향한 나의 원이 참 바른 것이라면 다른이와 더불어 나누어 갖고싶습니다. 맑은 아침같이 정결한 의지를 키워 주십시오. 나는 오로지 당신의 피로써 태어난 목숨임을 더 깊이 알게 해 주십시오.
고적한 침묵을 타고 밤은 내립니다. 신비의 절정으로 나를 안아주는 밤. 한 영혼의 비밀한 얘기를 당신은 들으십니까, 하여, 하나이신 당신 앞에 내가 외우는 노래- 사랑하는 일입니다. 바친다는 것입니다.

 

4.
아무 예고도 없이 가슴에까지 돌을 던지는 바람은 내가 인간이기에 인간의 숲으로부터 옵니다. 남을 보고야 얼마든지 잘 다스리라고 천연스럽게 말도 하지만 바람이 내게 불어 괴로울 제는 얼마나 비겁하게 못난 얼굴을 하는지요.
비록 고맙지 않게 보이는 바람일지라도 숨겨진 깊은 뜻을 믿음으로 밝혀 내게 하십시오. 바람이 멎으면 벗들과 마주 앉아 성숙한 대화를 갖고, 그제사 나의 기쁨은 바람에 영근 하나의 별이 될 것입니다.
나는 생동의 바다 가운데서 겸허와 진실의 해초를 뜯어내고 싶습니다. 순간 속에 영원을 사는 행복이란 진주를 캐어내고 싶습니다.

 

5.
당신을 알고 난 뒤 낯이 설던 우주는 안온한 나의 집이되고 당신을 사랑한 뒤 낯이 설던 이웃은 나의 형제가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나 주님, 당신 모습 수시로 알아보지 못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어딜가나 버림받고 가시밭에 뒹구는 고뇌의 당신, 초췌한 얼굴로 찬비 맞으며, 병들고 배고픈 거리의 이웃들과 함께 시시로 죽어가는 당신 모습 알아보지 못했음을-
억울하게 매맞고 웃음거리되어 질퍽한 시장길로 당신이 쫓기실 때, 할 바를 모른 채 멍청하니 서 있던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내 집 문밖에서 기웃거리던 당신을 빚쟁이로 몰아세운 나의 불손함을 상처투성이의 그 얼굴 외면해 버리고도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로만 익혀온 나의 헛맹세를 진정 용서해주십시오
나의 무관심으로 불행히 죽어가는 이웃의 착한 얼굴들이 되살아 오는 이 순간, 조금만 눈을 뜨면 수많은 당신 모습 발견할 수 있고, 당신을 힘 입으면 당신만큼 뜨겁게 사랑할 수 있음을 항시 기억치 못한 우매한 나를--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6.
절더러 어떻게 하라시는 건지 대답해 주십시오. 어디선가 갑자기 어둠이 내리더니 내 가던 길마저 보이지 않고, 정든 친구들도 미소를 버리고 저만치 외면하여 다른 길로 떠났습니다. 볼품없이 잊혀진 나를 억울해 하면서 슬프디 슬픈 체념을 눈 아프게 울었습니다. 단 하나의 기쁨이 되어 주실 당신의 모습조차 지금은 희미해졌습니다. 잔뜩 성이 난 표정으로 당신을 기다리다가 일그러진 내 얼굴이 미워져서 다시 울었습니다.
내가 만든 자아의 성벽은 와르르 무너지고 느닷없이 솟구치는 새로운 물줄기 - 이 기쁨, 이 예기치 않던 깨우침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주여, 지금은 정말 대답해 주십시오.

 

7.
어떻게 내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요. 말로만 사랑을 익히는 나의 거짓이 못견디게 슬플 때, 꼭 붙들었던 진리의 의미마저 짐짓 멀어지고 당신을 위한 나의 노래가 쓸모없이 느껴지던 의혹의 시간들을-
기도할 수 없는 나, 울 수도 없이 메마른 나를 아직 지켜갈 수 있음은 당신이 심어주신 불멸의 노래, 내게 주신 소중한 '첫 신앙'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월을 삼키던 빈 하늘을 지키며 어둠 속에서 빛을 그리는 나의 뜨거움을 지금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어 조용히 내가 작아지는 즐거운 한숨의 시간, 주여, 당신의 대답을 기다립니다. 어제처럼 밖에는 어둠이 짙은 기도의 시간입니다.

 

8.
가끔 당신을 편리에 따라서만 이용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숨어버리고 싶습니다. 변덕스런 매 마음에 당신은 몇 번이고 불쑥 화가 나시겠지요.
거울 속에 비쳐진 나의 모습 - 축 처진 어깨, 우울로 그늘진 얼굴, 당신의 위로마저 찾아 볼 길 없는...
덕으로 드러나 칭찬받고 싶은 내 오만한 욕심을 당신은 얼마나 불쾌히 여기셨겠습니까.
참으로 작아지는 겸손을 내가 배워 익힐 제 당신은 비로소 나를 받으시고 기쁨으로 이 마음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뜻을 따르기 위해 산 같은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오니 그 뜨거운 손으로 언제이고 나를 치소서. 죽어서야 다시 살을 나의 진실한 사랑-아직은 살아서 우미할지언정 나날이 당신을 입어 사랑의 화신되게 하소서.

 

9
종소리와 함께 환희 속에 트였던 나의 아침을 아직 기억하게 해 주십시오. 주신 하루는 즐거운 산책이었습니다. 함께 가던 이웃들의 따스했던 눈길과 슬펐던 무관심도 지금은 더 깊이 사랑하고 싶습니다.
언제나 진리를 향한 목마름과 아직은 생생히 살아있는 이 은총의 빛살을 잃지 않게 해 주십시오. 스스로의 어둠을 울어 다신 빛을 못 보는 슬픈 자가 아니 되고 싶습니다.
먼 데서 바람을 데리고 찾아온 나의 저녁이 다시 내일을 약속하는 이 시간 -아아 주여, 푸르렀던 오늘을 감사하게 하시고, 길이 당신 곁에 믿음으로 깨닫는 자 되게 하소서. 믿음으로 새로운 자되게 하소서.

 

10.
오랜 세월 뜨거웁던 하나의 염원을 안고 지금은 숲으로 간다. 하늘로 이어가는 나의 숲길에도 당신의 문은 열리어 문득 파도같이 부서지는 환희의 물결이여,
지금은 내가 깨어야 할 시간, 너와 함께 떠나야 할 출발의 아침이다.  형제여, 어서 아름다운 잔치에 초대되어 크게 나누이는 사랑의 기쁨을 노래해야지. 우리는 주저할 시간이 없다. 은총이여, 한점 꺼짐없이 타 올라 조금도 헛됨이 없는 우리의 햇살, 기쁨이여.
남 몰래 문 닫은 어둠 속에서도 나를 살게 하는 빛나는 목소리 - 나의 길, 영원한 바위, 오늘도 그리로 가야 한다. 진정 간절히 익혀 오던 오직 하나의 소원을 촛불로 밝혀 들고 또 다시 숲으로 가자.

ⓒ이해인(수녀) <민들레의 영토/카톨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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