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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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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진 숲길을 걸어 이곳 수북땅에 깃든 지 햇수로 벌써 몇 해째인가. 왼손으로 다 세고 이젠 오른손으로 세기 시작한다. 그간 조막돌 예쁘던 개울과 아기자기 꽃길마다엔 시멘트가 무참히 발라졌고, 들엔 널따란 공장 물류창고가 흉물처럼 들어섰으며, 전원주택은 생기지만 모두 주말별장이나 매일반이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토요일엔 드문드문 사람 목소리가 들리는데 고기 굽고 시끄럽게 놀다가 쓰레기 한가마니씩 내다놓고 사라진다. 고양이와 개가 비닐봉투를 뜯어놓아 일주일 내내 그쪽에선 악취가 진동한다. 소·돼지를 굳이 묻지 않아도 이미 침출수는 도처에서 흘러나와 식수원과 강물을 오염시키고 있다.
촌 버스 타고 오는데 할딱고개 지나서 전망 좋은 곳, 오층 건물이 들어섰더라. 청산은 간데없고 산모롱이 어디에나 새로 생기는 유곽 러브호텔, 펜션, 백숙과 갈비를 파는 가든 음식점. 저렇게 집은 느는데 이사할 집은 아니렷다. 겨울이면 읍내 네거리 갓길에다 용달 트럭을 대고 호떡 장사하던 미선이네가 살던 집. 미선나무가 있는 줄도 몰랐을 미선이네는 함석지붕 고드름 얼던 그 정든 집을 팔고 어디로 이사간 걸까. 그 자리 섬뜩한 철골조가 올라가더니 미선나무는 결국 베어지고 말았다. 고작 일꾼들의 언 손이나 녹여주다가 재가 되었으리라. 불쌍한 나무, 미선이의 미선나무!
오래전 영국을 여행하며 남쪽 촌구석 마을 다팅턴을 다녀왔다. 간디의 제자 사티쉬 쿠마르란 인도 사람이 이 마을 촌장이다. 뜻을 같이하는 벗들이 속속 찾아들어 마을엔 아이들이 늘었고 대안학교도 생겨났다. 가축을 방목하고 손으로 젖을 짜며 자전거도 마다하고 오로지 걸어다니는 산책과 명상, 경쟁을 거부한 얼굴마다 느긋하고 행복해 보였다. 검박한 생활태도와 배려, 환대로 이미 지상에다 천국을 차려보인 그 마을, 자꾸 그 마을 생각이 난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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