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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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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짐은 장터에서 샀을 지압 슬리퍼를 짝짝 끌고 저벅이는데 모내기철임에도 문전옥답을 그저 지척에서 바라만 볼 뿐이다. 옆에 맹인 안내견처럼 꼭 따라붙어 다니는 황구부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 얼굴로 아짐을 쳐다본다. 만성신부전, 진단을 받고 돌아오는 길 힘없이 주저앉았던 논두렁길. 새 모판이 몇 해째 들어오고, 푸른 모들은 해마다 살랑거리는데 몸은 갈수록 무너지고 으스러져 한 치 앞을 모르겠다. 아재는 다른 군 지역의 공사현장을 다니는 관계로 며칠씩 집을 비우기 일쑤다.
오래전 아짐은 마치 영화 <서머타임>의 캐서린 헵번이 그랬던 것처럼 카페 테라스와 같은 마을 정자에 나앉아서 베네치아의 노을 못지않은 장관을 눈시울 젖어가며 음미하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이젠 꽃바구니를 들고 베네치아의 역전으로 달려오는 아저씨 대신 오만가지 구겨진 인상을 쓰고 돌아오는 저 지친 남자.
묵은 김치를 꺼내 남편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넣고 찌개를 끓여 밥상을 차린다. 방이 덥다며 오늘은 감나무 아래 평상에서 밥을 먹겠단다. 밥상은 밍밍한 침묵이 흐르고, 평상에다 고무줄로 묶어놓은 라디오 혼자서 왕왕거리며 노래를 뽑는다. 거슈윈의 ‘서머타임’을 빌리 홀리데이가 부르는 중인데, 아재는 뉴스 나오는 방송을 찾겠단다. 크레인 위에서 수개월째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동지.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미루나무 꼭대기 같은 크레인 위에 위태롭게 둥지를 튼 새와 같은 여자.
얼핏 들어도 자기같아서 “거그다 놔놔 보시재만.” 아짐이 처음으로 한마디 꺼내는데 “버버리(벙어리)는 아님마?” 뾰루퉁 입술을 내밀던 아재. 동시에 라디오를 탁 꺼버린다. “여름 타능가 겁나 핼쓱해져부렀네. 맘 팬히 묵고 뱅원에 입원을 허든지 허소. 심(힘)들믄 심들다 말을 허고. 알았재?” 새 같은 여자가 고개를 끄덕거린다. 더운 국물 한 숟갈.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남자도 속으로 뜨겁게 우는 거 같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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