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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일기4- 겨울 나무의 마음으로

이해인 이해인............... 조회 수 1854 추천 수 0 2012.01.08 01: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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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1112

 

기도일기 4- 겨울 나무의 마음으로

 

1
12월 밤에 조용히 커튼을 드리우고 촛불을 켠다. 촛불 속으로 흐르는 음악. 나는 눈을 감고 내가 걸어온 길, 가고 있는 길, 그 길에서 만난 이들의 수없는 얼굴들을 그려본다. 내가 사랑하는 미루나무를, 민들레 씨를, 강, 호수, 바다, 구름, 별, 그 밖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본다. 겨울밤, 촛불이 주는 이 아늑하고 정결한 기쁨과 평화 속에 나도 하나의 촛불이 되고 싶다. 끝까지 성실하고 깨끗하게 연소하는 이 수직의 헌신,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밤, 시를 쓰는 겨울밤은 얼마나 아름다운 축복인가. 누가 감히 그 앞에 죄를 지울 수 있을 것인가.

 

2.
사랑이여, 내가 선택한 당신은 12월의 흰 얼굴을 닮았습니다. 눈송이처럼 내 안으로 떨어져 눈물로 피는 당신이여, 전부를 드리고 싶은 내 뜨거운 그리움이 썰매를 타는 겨울. 바람은 그대의 눈, 바람은 그대의 음성, 바람은 기도입니다. 그대 앞에 나는 언제나 떨리는 기다림의 3월입니다. 힘찬 파도로 내 안에 부서지고 보채며 절규하는 사랑이여.

 

3
야훼, 나의 임이시여, 당신을 찾지도 않고, 당신은 숨어 계시다고 말하지 않게 하소서. "크리스천의 희망은 값싼 것이거나 생의 어려운 경험이 없어 철없이 뛰는 미숙한 소망이 아니다. 그 희망은 사람의 정신, 사람의 인내, 사람의 선, 사람의 성취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을 믿는 희망이다"라는 말은 얼마나 큰 진리인가.

 

4.
사랑하지 않는 이가 제일 가난하고 사랑을 베푸는 이가 제일 부유한 이라는 오늘 신부님의 말씀을 새겨듣는다. 보답을 바라지 않는 순수하고 무조건적인 사랑, 사막과 같이 느껴질지라도 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랑은 참으로 어렵다. 오늘도 새벽은 내 가슴에 새 종(鐘) 을 달고 투명한 소리를 낸다. 나는 내 동행인(同行人)들에게 사랑의 빚을 진 순례객. 혼자서는 그 많은 빚을 다 갚을 수 없고 오직 아버지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하다.

 

5
"지난 소설(小雪), 산에는 첫눈이 내렸습니다. 오랜만에 내리는 눈을 보니 착해지고 싶었습니다." 벗, 데레사를 통해 뵙게 된 법정(法頂) 스님의 산(山) 향기 배인 글을 흰눈처럼 조용하다. 어둠이 스며드는 겨울, 나의 방, 누구에겐지 실컷 용서를 빌고, 실컷 울어 버렸으면 싶은 날. 가슴으로 수없는 흰구름이 밀린다.

 

6.
고통의 환희 같은 것을 맛보고 싶은 갈망에 내 영혼이 눈뜨고 있다. 얼마만큼 사랑받느냐가 아니라 얼마만큼 사랑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사랑은 단 포도물, 또한 짜디짠 소금물이기도 하다. 기도의 필요성, 호흡 같은 기도, 무한정 기쁘면서도 괴로움이 따르는 기도. 너무 넓고, 크고, 너무깊고, 높아서 때로는 나를 슬프게 하는 하느님, 그는 물이다, 불이다, 영(靈)이다. 바람, 파도, 폭풍 그리고 화산(火山)이다. 그는 좋으신 임금님, 짓궂은 연인, 나를 병들게 했다. 그래, 살아서는 고칠 수 없는 인간의 병, 그러나 살기 위해 앓아야 하는 행복한 고통인가. 나의 가장 좋은 화살기도는 늘 '사랑합니다'의 연속이다. 힘들어도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 그분 사랑의 햇빛을 골고루 나누어 줄 수 있는 믿음의 부자. 자유인(自由人)

 

7
썰물 때의 바닷가 같은 나의 오늘. 줄곧 시를 품고 있는 마음밭에 하얀 눈발이 흩날린다. 내가 내 안에서 느끼는 깊은 절망과 허무에 한숨 쉰다. 허영의 겹옷을 껴입은 자신의 오만함을. "오, 내 성소의 하느님, 내 연약함 가운데 강한 당신 은총의 불가사의에 내 마음이 자꾸만 놀라게 해 주소서" 라는 칼 라너 신부님의 기도를 빌려 왼다.

 

8
내 쓸모없는 생각들이 모두 겨울바다 속으로 침몰해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도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일 때 바다를 본다. 누구도 사랑하기 어려운 마음일 때, 기도가 되지 않는 답답한 때, 아무 이해도 못 받는 혼자임을 느낄 때, 나는 바다를 본다. 참 아름다운 바다빛, 하늘빛, 하느님의 빛. 그 푸르디 푸른 빛을 보면 누군가에게 꼭 편지를 쓰고 싶다. 사랑이 길게 물 흐르는 바다에 나는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

 

9.
겨울날, 한 알의 홍옥을 깨무는 맛, 쪼개면 물기 많고, 부드럽고, 신선한 홍옥. 정답게 친구와 나누어 먹고 싶은 한 알의 사과에선 빨간 장미의 향기도 난다. 그 열매 속에 숨어 있는 햇빛, 바람, 비, 사랑.

 

10
잎새 하나 안 드리운 나목(裸木)의 마음인가. 그분 안에 오히려 아름다운 나의 약함과 허물을 감사하는 시간. 왜 그가 나를 불러야 했는지, 왜 내가 그를 따라야 했는지 더욱 알아듣게 된다. 항상 나를 짐스럽게 하던 우상들도 차츰 물러서고 이제는 "오직 당신만을!" 하고 외쳐보는 마음. 그러나 마음 놓을 수 없는 나약함. 기도가 무기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11.
피정이란 기간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들인가. 본원 수련소에 와서 아침마다 새소리에 잠을 깰 수 있다니 꿈만 같다. 바쁜 일정에 조바심치며 숨차게 뛰던 날들로부터의 해방감. 검은 옷의 흰 얼굴 - 수녀들은 대체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누가 그들을 여기에 모이게 했는가. 두 딸을 수녀원에 두시고 걱정이 많으실 어머니의 어진 모습도 생각나던 날, 뒷산의 소나무처럼, 빨간 열매를 단 사철나무처럼 청청(靑靑)한 신앙을 키우며 욕심 없이 살고 싶다.

 

12
뜨거운 태양이 내 온몸에 향유를 바르는 이 아침. 오늘도 살아 있음을 나는 기뻐한다. 이웃에게 조금의 향유라도 발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모든 게 다 은총임을 믿고 감사한다.

 

13.
제법 길었던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니 왠지 허전하고 아까운 느낌. 지금의 나에겐 하등의 필요 없는 부분인데 -- 아마도 여자의 집착이라는 걸까? 머리뿐 아니고 자신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잘리어 나가는 아픔, 성숙을 위한 아픔을 나는 앞으로 또 얼마나 더 겪어야 할 것인가. 내가 나를 채우는 길이란 봉사밖에 없다. "남에게 감사나 칭찬을 받지 않고 충족감도 맛보지 않은 채 봉사한 일이 있었던가?" 묻는다면, 글쎄... 강요받지 않고 인정받길 원치 않고 기쁘게 행하는 것만이 진정한 봉사라고 생각된다. 진정 말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선과 덕의 필요. 끈질긴 노력으로 되풀이 연습해야 한다. 하면 된다.

 

14.
겨울 산에 가서 도토리 껍질, 잔솔가지를 주워 방에 들이니 산 내음이 가득하다. 내려오는 길에 보니 아주 구석진 담 밑에 하얀 솜털의 민들레가 않아 있는 모습, 하 반가와 불어 주었더니 가볍게 날아간다. 봄이 오면 꽃이 피겠지. 작은 얼굴로 배시시 웃는 모습 눈에 선하다. "어떤 때는 내 영혼은 거지며 방랑자이고 또 어떤 때는 동산에 있는 공주였습니다"는 칼릴 지브란의 글을 읽었다. 사랑은 결코 무사하지 않음을, 말로는 다할 수 없음을 가르치는 야훼시여. 당은은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이해인(수녀) <두레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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