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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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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가 벌써부터 시작되었다. 벌써부터도 아니지. 한 달밖에 안 남은 올해. 이곳 남쪽 사람들 송년회는 부어라 마셔라 무조건으로 막걸리렷다. 갓 담근 김장김치, 막 쪄낸 두부, 팔팔 찌개 하나 끓여설랑 막걸리를 한 순배씩 돌리고 나면 얼굴마다 훈기가 확 피어오른다. “올 한 해 고상들 많아부렀네잉. 한잔 쫙 찌크러부러(마셔). 아따메 냉기지 말고(남기지 말고) 말이시….” 막걸리 주전자에 근심 모두 걷히고, 주막은 밤새 찾는 이들로 북적북적. 야명렴(밤에 빛을 낸다는 전설 속의 발) 발자국들로 가로등조차 무색할 지경.
남녘교회에 머물 때는 성찬예식에 붉은 포도주를 썼는데, 추수감사절엔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대부분 좋아하셨으나 낯을 찡그린 분들도 계셨다. 성경에 써진 그대로 예수님 별명이 술꾼이요 먹보신데…. 암튼 막걸리 좋아하는 목사로 알려진 뒤로 그 좋아하던 싸구려 와인 선물은 구경조차 못했다. 도끼날 같은 눈을 뜨고 와인을 찾았건만 목사관에 입고되는 건 쿰쿰한 탁주가 전부였다.
막걸리 맛은 동네마다 지방마다 살짝쿵 다르더라. 우리 동네 담양은 댓잎 향기가 흐르는 대대포 막걸리가 대세다. 댓글 말고 댓잎. 댓글 정권의 시름도 이 댓잎고을 대대포 막걸리로 푸는 형국이다. 관방제림 국수골목에서 막걸리 두어 잔 해갈하고 돌아오는 길, 따뜻한 붕어빵도 한 봉지 사서 동네 할머니랑 나눠 먹고…. 숲이 그림자를 키워 어둠이 찾아들면 시름 대신 시심이 깊어져설랑 글도 술술 풀린다. “술이술이 말술이 술술이 사봐!” 친구들에게 우스개 문자도 날린다.
전라도 아가씨가 서울에선 서울 말투를 빌려 쓰는데 주로 “어머머”, 그러다가 길에서 넘어지면 “오메메”가 절로 나오듯이, 막걸리가 ‘일베’ 아니고 ‘일배’로 돌아가면 진한 사투리가 터져들 나오기 마련. 몸은 사람, 머리는 코끼리인 힌두교의 신 가네쉬처럼 술잔을 쭉쭉 빨고, 수염에 묻은 잔금도 털고 나면 부처요 예수인 당신이 내 앞에 앉아 계신다. 이미 이렇게 행복하고 세상을 다 가졌는데, 왜 우린 그걸 모르고 가난하단 투정들인가 몰라라.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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