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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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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두릅 순을 따고 진달래를 꺾으며 다니던 뒷산. 찬 서리에 텅 비어 꿩이나 토끼가 인기척에 놀라 후다닥 도망치는 소리뿐이구나. 북풍한설이 잠깐 물러나고 훤해진 산길과 들길. 보통 연초가 되면 며칠이라도 등산객들로 이 길이 북적거리곤 하였다. 마음조차 모두 얼어 버렸는지 썰렁한 새해벽두. 죄다들 지리산 노고단으로 가버린 걸까? 구례로 어디로… 덕분에 고즈넉한 산보를 다녀와 곱은 손을 난롯불에 녹이니 이제야 좀 살 것 같아라.
할머니들은 봉쇄수도원 수녀님들 맹키롬(-처럼) 코빼기도 안 비치고 모두 숨어 지내네. 낮부터 테레비가 유일한 낙이요 외로움을 달래주는 동반자, 그런데 그 소리도 조용하다. “당최 보고 싶지가 않아부러. 즈그들만 좋다고 웃고 그라재 먼 내용인지도 통 몰르겄고….”
1월 해오름달, 새해 아침 당신은 어찌 지내시는지. 다만 너무 고독하지 않기를 바란다. 폴란드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는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타인의 음악에서만, 타인의 시에서만,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노래했다. 이웃동네 구례 청년이 연초에 잠든 우리를 깨우며 타인의 구원을 증거하고 있구나. 마지막 시처럼 우리 안에 가득한 공포와 결핍을 부디 가져가주길….
택시 운전과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취직 시험을 준비해온 구례 청년. 대위 계급장이 빛나는 진짜 애국 청년, 가난을 이겨가며 성실하게 살아온 그는 왜 자기 몸에다 무서운 불을 댕겼을까. 치졸한 지역차별, 마비된 신문 방송,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공안 통치, 행복은커녕 안녕도 하지 못한 대다수 노동자들과 청년학생들. 친일매국노들이 쓴 교과서에다 댕겨야 했을 불을 자신의 몸에다 지른 구례 청년의 소식으로 새해 첫날은 아픈 출발이었다.
오늘 벗들이랑 만나 YMCA 빈소에 들러 국화꽃으로 애도하기로 해놓고선 예전 고문당한 뒤 저수지에 시신으로 버려졌던 조선대생 이철규 열사, 전남대 교정 시멘트 바닥에 꽃잎으로 떨어졌던 박승희 열사, 그 이름들이 떠올라 주먹손을 부르르 떨었다. 구례 청년, 두릅 따고 참꽃 따던 지리산에서 한 번은 스쳤을지도 모르는 그 청년… 봄산에서 우리 만나야죠!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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