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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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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생강 입술
대추차·모과차·생강차 중에 고르라 하면 전에는 모과차를 골랐는데 요샌 입맛이 변했는지 생강을 찾게 된다. 나이 들수록 생각이 많아져 생강을 찾게 되는 것일까? 맵다가 쓰다가 텁텁하다가 순하다가 얼굴을 찡그리게도 만들고 코가 뻥 뚫리게도 되는….
천운영의 소설 <생강>에는 딸과 대립각을 세운 아버지, 생강처럼 갖가지 맛을 함유한 고문기술자 아빠가 등장한다. 실제 주인공은 야바위 속성 통신과정으로 목사가 되었다지. 최근 정원마다 빨간 꽃은 뿌리째 뽑아버리겠다며 기염을 토하신 영화감독 목사도 괴이한 물건이다. 나도 물론이고 목사 세계는 참 가지가지 맛들로 복잡한 생강 같아라.
천길 절벽 아래 성난 파도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인생마다 굽이굽이 곡절도 많고 난관도 연속. 나환자의 손을 보는 듯 뭉툭하게 잘리고 굽어진 생강이여. 하늘에 별들은 자유로우며 푸른데 생강은 숨 막히는 땅속에서 얼마나 벗어나고 싶었을까. 롱펠로는 자신의 시 ‘인생찬미’에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새겼다. “최선을 다하고, 그러고 난 뒤 신의 뜻을 기다리리.” 볼품없는 얼굴이라도 초야에 묻혀 다부지게 꿀벅지를 만들어온 생강에게, 최선을 다한 생강에게 신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맛과 향을 안겨주셨음이다.
담벼락에 봄볕 쬐며 ‘비행 할매’들이 담배를 뽀금뽀금 빠시는 날. 지난겨울 보이지 않던 풀도 마당에 쭈뼛거리고. 날이 풀려 뒷산에서 땔감을 더 끌어내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추위에 못 견뎌 청혼을 할 필요도 없으니 그대 홀로 가라. 생강차 덕분에 감기 모르고 설을 쇘다. 각설탕처럼 모난 달콤함도 그렇고 ‘나쁜 남자표’ 생강에 한동안 빠져들었느니.
상상임신처럼 생강을 생각하기만 해도 입속에 가득 번지는 싸~한 맛과 향.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하는 이들에게 생강을 한 자루 안겨주고 싶다. 알쏭달쏭 인생을 맛보라며. 적어도 쓴맛을 아는 사람이랑 연애하길 빈다. 짓이겨진 인생 같은 생강 입술에 포개어지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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