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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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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선물 보따리
자녀들 보러 서울로 향하는 버스터미널, 기차역, 공항에선 바리바리 담긴 음식물을 든 노부부를 흔하게 마주칠 수 있다. 아랫녘 우체국에 가면 박스마다 가득 넣은 음식물이며 애비 신으라고 장터에서 산 검정색 양말까지 택배로 부치려고 순서를 기다리고 계신 어르신들을 쉽게 뵙곤 한다. “애말이요. 요기 조깐 주소 잠 적어주시믄 고맙겄소잉. 이라고 칸이 작어가꼬 당췌 글자를 넣을 수가 없게 생개부랬응게 안 그라요.” 내가 대신 택배주소지 기입란에 글씨를 써드리기도 여러 번. 어기영차 들었다 놓으면 막 빻은 고춧가루의 진한 향과 참기름의 고소한 향이 훅훅 풍겨 나오고는 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엔 평양으로 길 떠나는 정하섭을 위해 소화가 눈물바람으로 준비한 음식 보따리 이야기가 나온다. “미숫가루를 만들고, 오징어를 구하고, 속옷을 빨고 … 이른 저녁밥을 서둘렀다 … 육포를 구하지 못한 것이 한사코 마음에 걸렸고, 미숫가루에 참깨를 좀 더 넣지 못한 것이 자꾸만 마음에 쓰였다 … 아무리 참으려 했지만 눈물은 가슴벽을 줄줄이 타내리다 못해 반찬그릇에고 솥뚜껑에고 뚝뚝 떨어졌다.”
요즘 보면 이웃지간 먹을거리도 잘 나누지 않고, 잔치에 떡 돌리기도 생략하더라.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데 선물을 준비하지 않고 만나는 게 당연하다는 투다. 전에는 박카스 한 통이라도 들고 갔는데….
정성 보따리, 정이 차츰 사라져가는 것이 개탄스럽다. 명품 가죽백 선물 얘기는 암울하고, 그림이 새겨진 싸고 좋은 에코백도 많은데. 꽃집에 들러 꽃다발 주문하고 엽서 한 장 쓰는 젊은이가 귀하다. 책 한 권, 좋은 음반 선물할 줄 아는 멋진 사람아. 불경기에 가장 위태로운 집이 꽃집이고 서점이라니 슬픈 현실이렷다. 솥뚜껑에 떨어지는 눈물, 그런 정성으로 마련한 보따리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선물 하나쯤 고를 줄 아는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냥 사람이라고 죄다 희망인 게 아니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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