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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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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1785. 편안함
지난해 가을. 용두동교회 여선교회에서 단강을 방문하던 날이었다. 마침 그날은 동네 벼타작이 끝나는 날. 병철씨가 콤바인으로 안 골 벼를 베러 오기로 한 날이었다.
서둘러 일하면 서울 손님들이 내려오기 전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아침일찍 서둘러 안골로 갔다.
그러나 일은 만만치 않았다. 기계가 들어갈 수 있는 논이야 논 가장자리의 벼만 베어놓으면 되었지만, 아랫쪽으로 붙은 작은 논 두 대랭이는 천상 낫으로 모두 베어야 했다.
한 주먹이나 될까 싶은 작은 논이었지만 서툰 낫질 솜씨로는 일이 한참이었다. 몇 번 낫질을 하여 벼를 논둑에 쌓는 일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
벼 베는 일이 막 끝났을 때 병철씨가 콤바인 기계를 가지고 올라왔다. 기계로 벼를 터는 일은 잠깐이었다. 오히려 볏단을 나르기가 바빴다. 벼를 모두 털고 볏가마를 옮겨 쌓고 병철씨가 막 내려가는데 버스 종점께 차가 서더니 많은 사람들이 걸어올라오기 시작했다.
일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그만큼 간 것이었고, 그 사이 서울에서 손님들이 도착한 것이었다.
청바지에 티셔츠. 밀짚모자에 긴 장화, 게다가 옴 몸에 흙투성이. 집에 내려와 샤워라도 해야 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손님은 이미 도착했고 도착하면 드리기로 한 예배에서 설교를 하기로 했으니 시간이 없었다.
그 차림 그대로 예배를 드렸다. 이런 차림으로 말씀을 전해도 되는 건가 싶도록 허름하고 엉망인 차림, 흉하지 마시라 양해를 구하고 인우재 마당에 둘러앉아 예배를 드렸다.
사방 곱게 물든 단풍과 따뜻한 가을볕. 어디를 둘러보아도 은총 가득한 풍경이었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까, 허름하고 허술한 차림새가 내 스스로에겐 오히려 편안했다.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을 짐작할 순 없었지만.(얘기마을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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