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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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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 허준
요즘 <허준>이란 드라마를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모양이다. 시청률이 50%에 가깝다 하고 그런 수치는 실로 드문 일이라 하니 대단한 열기라 하겠다. 얼마전 교역자 월례회의에 참석했다 식사를 하는데,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허준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가는 것을 보았다. '소설 동의보감'을 통해 감동을 받은 기억이 새로워서 시간이 되면 식구들과 함께 드라마를 보는 재미에 빠지곤 한다. 그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얼마전 방송된 스승 유의태가 허준을 내치는 장면이 내게는 새삼스러웠다. "아! 그래!" 나도 모르게 탄식이 새어나왔다.
유의태 문하에 들어온 지 몇 년 되지 않은 허준에게 뜻밖의 일이 주어진다. 창녕에 사는 성대감의 아내 정경부인 심씨의 병을 고치라는 스승 유의태의 분부였다. 용하다는 숱한 의원들이 찾아왔다가는 하나같이 손도 쓰지 못하고 포기했을 정도로 부인의 병은 깊고 위중한 상태였다. 양반 중에서도 양반인 권세 어린 대감집 인지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유의태는 허준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아들 도지 대신, 그리고 자기가 가는 대신 겨우 십여명의 병자를 돌아보았을 뿐인 의가의 풋내기 허준을 보낸다.
대감의 권세에 굴하지 않는 단호한 처신과 지극한 정성으로 허준은 불가능해 보였던 정경부인의 병을 기적처럼 고쳐낸다. 마치 약사여래불의 재림을 보듯 사람마다 외경의 눈으로 허준을 바라보는 것은 당연했다.
고마음의 표시로 집을 한 채 지어주겠다는 대감의 호의를 깨끗하게 물린 허준이었지만, 허준은 끝내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아들고 대감집을 나서게 된다. 내의원 입격에 꿈이있는 걸 알게 된 대감이 내의원을 관장하는 도제조에게 소개장을 써 준 것이다. 도제조인 우의정은 대감과 교분이 두터운 사이로 대감의 소개자이라면 내의원 취재에 합격을 보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는 일이었다. 천민의 신분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 허준은 대감이 써 준 천거서를 감격하여 받아들고 집으로 온다.
허나 다음날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소개장을 받아왔다는 말을 들은 유의태는 소개장을 내놓으라 허준에게 불호령을 하고, 허준이 보는 앞에서 불살라 버린다.
"비록 세상이 어지러워 공(公)과 사(私)가 애매한 풍속이기로서니 인명을 다루는 의원은 사사로운 인정으로 자격을 얻을 수 없다."
이런 나약한 자가 자신의 문하에서 나왔다는 것을 참을 수 없는 수치로 여기며, "벼슬 높은 자의 서찰 따위로 네 앞날을 열려고 마음 먹은 순간에 너는 이미 나를 배신한 것, 너와 나의 인연은 끝났다."며 유의태는 허준을 자신의 집에서 매섭게 내쫓고 만다.
그게 스승, 우리가 요즘 이야기 하는 '맨토(MENTO)'의 모습이었다. 허준에겐 생명과도 같았던 소개장을 단숨에 불살라버리는, 사사로운 정에 이끌림 없이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가르는, 정신적인 스승을 일컫는 '맨토'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예수를 스승으로 따르는, 우리에겐 아직도 불태워 버려야 할 소개장이 정말 없는 것일까?
-이번에 감리교 신문인 <기독교 타임즈>가 재창간 되어 나왔다. 재창간호부터 '한희철 목사의 목회이야기'를 연재하게 되었고, '불태워야 할 서찰'은 그 첫 번째 이야기가 된다.
제 손금 들여다 보듯, 볕 좋은날 원숭이들이 서로의 몸을 뒤져 벌레 자아주듯 주변을 돌아보려 한다. (얘기마을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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