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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 쓰레기통

이현주 이현주............... 조회 수 3231 추천 수 0 2001.12.29 21:52:31
.........

이현주6 <物과 나눈 이야기들/민들레교회이야기449>에서

 

6.정신병원 쓰레기통

 

지난 여름 어느 날, 경기도 축령산에 있는 서울시립정신병원 본관 1충 로비에 앉아 있었다. 면회 온 사람들과 상태가 좋아진 환우(환우)들이 오락가락 하는 사이로 쓰레기통이 눈에 띄였다.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말을 건넸다.
"좀 지저분하구나?""
"내가 명색(명색)이 쓰레기통 아니냐? 지저분 한 게 내 본분(본분)이지. 만일 내가 지저분해지지 않는다면 나는 내가 아닌거다."
"그래도 깨끗이 치워져 있으면 지금 보다는 나을텐데..."
"자네가 보기에는 그럴는지 모르나, 나하고는 상관없는 얘기다.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깨끗하니까..."
"네가 언제나 깨끗하다고?"
"그렇다. 나는 처음 난들어졌을 때의 그 맑고 깨끗한 모습을 조금도 잃지 않았다."
"방금 전에 너는, 지저분한 게 내 본분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랬지."
"그렇다면 한 입으로 두 말을 한 셈 아닌가?"
"옳다."
"그래도 되는 것인가?"
"그래도 되는 게 아니라 그래야 한다. 나는 지저분할 수밖에 없는 존재면서, 그것이 내 본분이니까,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깨끗하고 맑은 존재다. 사람들은 대대 사물의 겉모습을 보기 때문에 지저분한 나 밖에 모르지만 담배꽁초와 휴지조각과 가래침 따위가 덮고 있는 나의 속모습을 보면 내가 얼마나 깨끗한 몸인지 알 것이다."
".........?"
"의심스럽거든 지금 당장이라도 내 몸을 닦아 보아라. 처음 공장에서 나왔을 때의 그 빛나고 깨긋한 몸이 자네 눈 앞에 그대로 나타날 것이다. 그것이 내 본디 몸이다."
"........."
내가 말을 잇지 못하고 앉아 있는데, 쓰레기통이 계속 말했다.
"여기 입원한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저들의 겉모습만 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한 거플 벗기고 보면 모두가 나리꽃처럼 곱고 순결한 영혼들이다. 내가 이 자리에 놓여 있어서 쓰레기를 담음으로써 그만큼 이 부몁능 깨끗하게 만들 듯이 저 사람들도 세상의 온갖 정신적 쓰레기를 자기 몸에 담아서 그만큼 세상을 깨끗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쓰레기통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 정신병을 앓는 사람 또한 정신병을 만들지 않는다. 쓰레기통은 쓰레기가 아니다. 정신병을 앓는 사람 또한 정신병이 아니다. 네가 이 비밀을 머리만으로가 아니라 옴몸으로 깨달았으면 좋겠다."
"........."
"그러면 어째서 성인(聖人)은 사람을 버리지 않고 사물을 버리지 않는지, 그 까닭을 알게 될 것이다.
"........."
"........."
"........."
"말이 나온 김에, 지금의 자네로서는 소화하기 힘들만한 진실 하나를 더 말해줄까?"
"........."
"깨끗한 것은 나 뿐만이 아니다. 내 몸에 지금 담겨 있는 담배꽁초, 가래침, 휴지뭉치도 모두 깨끗한 담배꽁초, 깨끗한 가래침, 깨끗한 휴지뭉치다. 세상에는 그 자체로서 깨끗하지 않은 것이 없다. 있다면 깨끗하지 못한 것이 있는 게 아니라 깨끗하지 못하다는 인간의 의식(意識)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사람을 두고 깨끗하다느니 더럽다느니 말하는 것은 거짓말은 아닐는지 모르나 진실을 말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은 등견예정(等見穢淨)이라, 더러움과 깨끗함을 한가지로 본다고 했다."
"........."
"........."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당신이 말씀하신 그 '비밀'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사물을 볼 때마다 마음으로 보아서 주의 깊게 보아라. 깊이 보아라. 그렇게 주의 깊게 볼 때 너는 네가 보는 사물과 함께 깨어나게 된다. 그런 일을 되풀이하여라. 습관이 되도록 반복하여라. 하루아침에 비밀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그런 일은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네가 사물을 주의 깊게 바라볼 때마다 그것들의 입을 빌려 내가 너에게 주는 명(命)을 잘 듣고 그대로 실천하여라. 방금 전에도 나는 쓰레기통의 입을 통해서, 사람을 겉모양만 보고 이렇다 저렇다 단정짓지 말라고 했다. 알아들었거든 그대로 하여라.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네가 먹지 않으면 너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
여기에서 대화는 끝났다. 며칠 뒤 나는 베트남의 망명스님 티크 나트 한의 글에서 이런 대목을 읽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거든 당신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라. '저 구름 보이지? 얼마나 장엄한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우리 안에 있는 행복의 씨앗에 매일 물을 줄 것인가? 기쁨을 배양(培養)하기, 사랑을 실습(實習)하기가 바로 그것이다. 주의를 기울이는 에너지를 지닐 때 우리는 이런 수행을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서 어떻게 아름다운 가을의 황금 들녘을 볼 수 있겠는가? 내리는 비의 기쁨을 어떻게 느낄 수 있겠는가? 숨을 들이 쉬면서 나는 비가 내리는 것을 안다. 숨을 내쉬면서 비에게 미소 짓는다. 숨을 들이 쉬면서 나는 비가 반드시 필료한 생명(生命)의 한 부분임을 안다. 숨을 내쉬면서 다시 미소짓는다. 주의를 기울이는 일(mindfulness)은 우리로 하여금 잃어버린줄로 알았던 낙원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Thich Nhat Hanh. pp.190-191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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