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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거울

이현주 이현주............... 조회 수 2387 추천 수 0 2001.12.29 21:56:57
.........

이현주12 <物과 나눈 이야기들/민들레교회이야기451>에서

 

 

12. 손거울

 

"거울아, 너는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생겨났느냐?"
"나는 나무것도 위하지 않는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거냐?"
"무엇 때문에 존재하면 안되는가?"
"........."
"자네 인간들은 무엇이 있는 이유를 대개 그 무엇의 밖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어디엔가 존재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면, 다시 말해서 어디엔가 쓸모가 있으면 안심하고 아무데고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면 불안해 한다. 내가 보기에 그건 참 딱한 병이다. 자네는 저 하늘이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으려고 저기 저렇게 있다고 생각하는가? 저 나무가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어 주려고 저기 저렇게 서 있다고 생각하는가? 자네는 저 꽃이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 주려고 저렇게 피어난다고 생각하는가?"
"꽃이 피는 것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건 네 생각일 뿐! 꽃에게 물어 보았느냐? 그대가 피어나는 것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냐고."
"........."
"사람만 빼놓고 어떤 사물에도 '...을 위하여'라는 딱지가 붙지 않는다. 사람한테도 본디는 없었지만, 머리가 너무 좋은(?) 덕분에 그것들을 스스로 만들어 제 몸에 붙였다. 그런데, 아뿔싸, 그것들이 그만 족쇄와 덫으로 되었구나.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다. 스스로 족쇄를 풀고 벗어나기를 바랄 뿐..."
"........."
"나를 보아라. 내 속에 나의 세계가 따로 있는가?"
"없다."
"내 세계가 따로 있다면 자네는 나에게서 자네 얼굴을 비쳐볼 수 없을 것이다. 저 무늬를 가진 벽지에 아무것도 비쳐볼 수 없듯이..."
"........."
"나를 보아라. 내 속에 나의 주장하는 바가 따로 있는가?"
"없다."
"내가 만일,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가지고 있다면 자네는 나에게서 자네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저 대표연설을 하는 국회의원 머리속에 다른 의견을 섞어 넣을 수 없듯이......"
"........."
"나를 보아라. 내가 무엇에 집착하여 그것을 붙잡아 두려고 하던가?"
"아니다."
"옛날에 누가, 참사람은 마음 쓰기를 거을처럼 한다고 말했지."
"장자(莊子)였다."
"아무였으면 어떤가? 그가 누군지는 몰라도 상관없다. 장자가 그런 말을 했든 안했든, 참사람은 나처럼 몸과 마음을 쓴다. 그러고 싶거든 자네도 나처럼,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지니지 않아서 인간의 말로 설명되지 않는 고요함에 들어라. 거기에 참된 사랑과 자유와 평화가 피어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지니지 않으면서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자네 눈에는 내가 죽어있는 것으로 보이는가? 죽은 거울이 사물을 비출수 있다고 보는가? 세상에는 죽은 것이 없다. 세상을 짓고 세상 위에 있고 세상 아래에 있고 세상 속에 있고 세상 밖에 있는 하느님이 살아있는 것들의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자네가 그 하느님을 믿는다면 자네 입에서 무엇이 '죽었다'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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