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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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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15 <物과 나눈 이야기들/민들레교회이야기452>에서
15 원격 조정기
"사람들이 너를 만들어 놓고, 원격 조종기(remote control unet)라는 이름을 붙였다. 소감(所感)이 있는가?"
"나는 그건 것 모른다."
"모르다니?"
"잘 알면서 왜 그러나? 나같은 기계에 소감이 있다면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느끼는 바'라는게 없어서 기계 아닌가?" "말 되는군. 그렇다면 네가 하는일은 무엇이냐?"
"나는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는원격 조종기를 들어오디오시스템을 겨냥하고 전원 단추를 누른다. 오디오 시스템에 불이 켜진다. 현재 상태로 씨디(compact disk)를 들을 수 있게 돼 있으니 씨디(c.d)를 들을 생각이면 곡 선택 단추만 누르면 된다. 무작위 연주를 하라는 단추를 누른다. 오디오 시스템이 알았다는 듯 여러 곡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들려준다. 음악이 흐른다. 아름다운 여자 가수의 목소리. 파니스안 젤리코......프랑크의 '생명의 양식'이다.
문득 이 방에 있는 모든 것이 원격 조종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음악을 듣고 있는 귀, 글을 쓰고 있는 손, 그것을 보고 있는 나, 피어오르는 향, 창밖에 지저귀는 아침 새들, 그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는 고요함......... 모두가 리모트 콘트롤을 받고 있는 리모트 콘트롤 아닐까? 끝없이 올라가는 (또는 내려 가는) 리모트 콘트롤의 계단......... 그 끝에는 누구의 손이 마침내 최후의 단추를 누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 손은 영원히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자네가 나를 손에 넣고 단추를 누르는 순간 나는 자네 몸의 연장(延長, continuation)이 되는 것이다. 자네 손이 되어 오디오 시스템의 단추를 누르는 것이지. 그러니 누군가 일을 했다면 그건 내가 아니라 자넬세. 안그런가?"
"그렇군."
"지금 노래를 부르고 있는 저 가수는 이 시간에 잠을 자고 있거나 비행기로 어디를 여행중이거나 아니면 죽었는지도 모르지. 그런데도 저렇게 노래를 부르고 있구먼. 자네가 반복 단추를 누르면 하루종일 이라도 계속해서 부르고 또 부르겠지. 그러니 지금 이 방안에 울려 퍼지고 있는 저 노래는 누가 부르는 것일까? 여자 가수인가? 자넨가? 오디오 시스템인가? 아니면 눈에 안보이는 전자(電子)들의 행렬인가? 그것도 아니면, 자네로 하여금 나를 조작하여 오디오 시스템을 작동시킨 그 누군가?"
"나도 지금 누군가의 원격 조종을 받고 있다는, 그런 말이냐?"
"좋으실대로 생각하시게."
"그렇다면 누구냐? 이렇게 나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
"자넬세."
"..........?"
"자네는 빈틈없는 수동(受動)과 빈틈없는 능동(能動)의 빈틈없는 작동(作動)이라네. 나처럼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처럼."
"나를 조종하는 나는 어디있는가?"
"자네 가슴에 있지."
"내 가슴과 내가 어째서 원격으로 조종되는가?"
"그 거리가 참으로 까마득하게 멀기 때문이지. 많은 사람이 제 가슴을 하늘의 별만큼이나 멀리 떨어뜨려 놓고 산다네."
"........."
속삭이듯, 원격조종기가 한마디 덧붙인다.
"그러나 그 거리는 사실은 없는 것이라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네의 가슴 아닌가?"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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