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단소

이현주 이현주............... 조회 수 2478 추천 수 0 2001.12.29 22:03:23
.........

이현주21 <物과 나눈 이야기들/민들레교회이야기455>에서

 

21.단소

 

그날도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 단소를 들고 갔다가 한번 불어 보라는 요청을 끝내 거절하고는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갑자기 단소가 말을 걸어왔다.
"어째서 집에 혼자 있을 때는 곧잘 나를 불다가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는 한사코 불기를 거절하는가?"
"내 비록 머리가 둔하기는 하지만 창피한 것쯤은 안다."
"무엇이 창피한가?"
"솔직히 내가 단소를 잘 불지는 못하지 않느냐? 게다가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가만!"
단소가 내 말을 막고, 단도를 찌르듯이 물어왔다.
"자네가 왜 단소를 잘 불어야 하는가?"
".........?"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이 아무개가, 단소를 잘 불어야 하는 까닭이 만고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단소 연주가도 아니고 이른바 국악인도 아니다. 그냥 취미로 단소가 좋아서 들고 다니는 것 뿐이다.
"........."
"자네가 단소를 잘 불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면, 자네가 사람들 앞에서 창피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
"언제까지, 근거도 없는 그놈의 '잘 해야 한다'는 귀신을 모시고 다닐 참안가?"
"........."
그 뒤로, 단소 불어보라는 청을 거절한 적이 없다.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광주 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도 불었고, 연세대학교 루스 채플에서는 유동식 선생님 고희 기념 예배에 불다가 막판에 소리가 안나서 중단하고 내려오기도 했다. 아아, 그래도 나는 창피하지 않았다. '잘 해야 한다'는 마귀가 떨어져 나간 뒤에 불어온 '자유'의 신선한 바람은 아직도 내몸을 감싸고 있다.
글을 써도, 설교를 해도, 잘 쓰고 잘 하려 애쓸 것 없이 다만 정성을 다하면 그뿐이라는 진리(眞理)를 가르쳐주신 단소는 나의 잊지못할 스승이시다.
단소를 분다. 청아한 소리가 허공을 채운다. 자, 방금 이 소리는 어디에서 났는가? 누가 이 소리의 임자인가? 없다. 내가 소리의 주인이라면서 나설 그 누구도 무엇도 없다. 아무도 단소 소리의 임자가 아니고 모두가 단소 소리의 임자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무데도 없고, 없는데가 없는 것이다.
단소소리는 하나님 것이다. 단소 부는 나를 본다. 자, 이 '나'는 누구 것인가?

ⓒ이현주 (목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7615 임의진 [시골편지] 남태평양 바나나 file 임의진 2011-09-04 2485
7614 이현주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고백 이현주 2005-04-05 2485
7613 이현주 목사인 내가 오늘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 이현주 2012-06-03 2483
7612 한희철 사랑과 상처 한희철 2012-02-06 2483
7611 한희철 해바라기 한희철 2012-03-14 2482
7610 이현주 이샹향은 바로 여기 이현주 2008-02-09 2481
7609 한희철 2363 그리운 사람 한희철 2007-12-09 2481
7608 필로칼리아 칭찬 앞에서 최용우 2012-01-06 2480
7607 한희철 2359 나누면 남습니다 한희철 2007-12-09 2480
7606 이현주 아버지의 유산 이현주 2007-10-25 2480
7605 김남준 숲속을 거닐어라 [1] 김남준 2005-08-11 2480
7604 김남준 인간 창조의 목적 김남준 2013-04-19 2479
7603 필로칼리아 미워 최용우 2012-04-11 2479
7602 김남준 새벽에 기대하라 김남준 2005-08-30 2479
7601 김남준 우리는 마치 양 같아서 김남준 2005-07-19 2479
7600 이해인 슬픔이 침묵할 때 이해인 2005-06-08 2479
7599 김남준 불붙는 사랑의 마음으로 [2] 김남준 2005-02-01 2479
7598 임의진 [시골편지]용감무쌍 지렁이 file 임의진 2011-06-06 2478
» 이현주 단소 이현주 2001-12-29 2478
7596 한희철 비오는날 저녁 한희철 2012-07-24 2477
7595 이현주 작은 것 적은 것 이현주 2005-04-05 2477
7594 이현주 유별나게 굴지 말라 이현주 2012-05-28 2476
7593 한희철 까치밥 한희철 2012-03-24 2476
7592 이현주 강도 만난 자의 이웃 이현주 2005-04-30 2476
7591 한희철 전부를 본 사람은 한희철 2012-02-27 2475
7590 홍승표 [한용운] 춘화 [1] 홍승표 2002-09-27 2475
7589 한희철 사람 사이 샘 하나 있다면 한희철 2012-05-01 2474
7588 한희철 빨래 한희철 2012-03-04 2473
7587 김남준 성화와 마음 김남준 2005-10-05 2473
7586 한희철 길하나 그렇게 여시는 한희철 2012-01-27 2471
7585 김남준 누가 손을 들겠습니까? 김남준 2005-08-30 2471
7584 이현주 최소 힘으로 최대 효과를 이현주 2012-05-28 2470
7583 이현주 예수와 성령은 비껴가는 존재인가? (요16:5-7) 이현주 2012-03-16 2470
7582 한희철 사랑이 아니면 한희철 2012-02-19 2470
7581 김남준 예수님의 능력의 비결 김남준 2005-09-15 2470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