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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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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24 <物과 나눈 이야기들/민들레교회이야기459>에서
24. 도기(陶器)
목포에 사는 주부(主婦) 이 아무개씨는 석산 김문호 선생 요(窯)에 드나들면서 흙좀 만지고 그릇 몇 개 굽더니 자칭 '도예가 아무개'로 행세한다. 물론 나처럼 스스럼 없이 대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우스개로 그러는 것일게고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받아 들였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맹탕 우스개 소리만은 아니렷다. 이제 처음 흙을 두드려 일그러진 모양의 그릇 몇 개 구워 본 가정주부 이 아무개와 사계(斯界)의 중견으로 명성을 얻은 도예가 김석산 사이에, 누가 진짜 도예가요 누가 가짜 도예가라고 구분할 수 있는 잣대가 무엇인가? 그런 것이 과연 있기는 있는가?
이럴 경우 이른바 전문가들이 나서겠지.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보고 진짜 도예가와 가짜 도예가를 판단해 낼까? (진짜.가짜라는 말이 귀에 거슬리면, 프로. 아마추어라고 해도 의미는 동일하다.)
그럴것 없이, 곁에 전문가도 없는 터에, 있다해도 그의 설명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지는 모르겠고, 마침 이 아무게 (자칭) 도예가께서 떠 넘기다시피(?) 선물한 화병(花甁)이 내 방 서제에 놓여 있으니, 직접 물어보기로 한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너를 만든 이 아무개씨를 진짜 도예가라고 생각하느냐?"
"내가 그분을 좀 알고 있지. 진짜 사람일세."
"아니, 진짜 사람인 줄은 나도 알고 있다. 그가 진짜 도예가냔 말이다."
"도예가면 도예가지, 진짜 가짜가 어디있나?"
"무슨 말이지?"
"세상에는, 도예가가 있고 도예가 행세를 하되 도예가 아닌 자들이 있을 뿐이다. 도예가 행세를 하지만 도예가가 아닌 자들에 대하여는 여기서 왈가왈부할 것 없고 남은 것은 도예가인데 도예가면 도예가지 진짜 가짜가 어디 있는가? 지네가 말한 이 아무개씨는 (진짜) 도예가다. 그건 내가 보증해."
"자네가 무엇으로 보증하는가?"
"내가 바로 보증일세. 나를 보시게. 보되 좀더 자세히, 애정어린 눈으로 보란 말일세. 이 은근한 빛깔, 절묘하게 일그러진 모양, 얼마나 기막힌 작품인가? 이런 나를 빚은 사람이 도예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그가 스스로 '나는 도예가 아무개'라고 말할 때 사람들은 모두 웃는다. 그들이 웃는 이유는 설명 안해도 되겠지?"
"자네도 웃었지. 그건 사람들이 돼먹지 않은 선입견으로 눈멀었기 때문일세. 피카소가 세 살 때 그림을 그려 놓고서 '나, 화가'라고 말했다면 그때도 사람들은 웃었겠지. 그게 사람들일세."
"........."
"나는 이 아무게씨가 흙으로 나를 빚을 때 얼마나 진지하고 얼마나 정성스러웠는지, 그 조심스레 떨리던 손길을 잊을 수 없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최상의 유일한 도공(道공)일세."
"옳은 말씀! 감동적이군. 그런데 한가지 더 묻고 싶은게 있네. 고대, 도예가 행세를 하지만 도예가 아닌 자들이 있다고 했는데 누가 그런 자들인가? 있다면 그들이 가짜 도예가겠지."
"그들 가운데는 아주 유명해진 인물들도 있다네."
"누군가? 그들이"
"자네는 목사니까 묻겠네. 목사가 설교를 하면서 사례비 받을 생각만 한다면, 돈 얼마 주겠다는 약속을 미리 받고서야 설교를 한다면, 그래도 그가 목사인가?"
"아니지"
"마찬가질세. 세상에는 그릇을 위해서, 그릇굽는 행복을 맛보고자, 오직 그 이유로 그릇을 빚는 사람도 있지만 안 그런 자들도 많이 있다네."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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