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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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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28 <物과 나눈 이야기들/민들레교회이야기463 >에서 
28. 병뚜껑
병뚜껑은 우리가 '비밀'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비밀은 감추어져 있는 동안 '힘'을 행사하지만 일단 밝혀지면 아무 힘이 없다. 그래서 "이미 보여지고 알려진 것에 너무 많은 시선을 쏟지 말라"(rumi)는 것일까? 뚜껑은 병의 입을 막고 있는 동안 존재 이유를 지니고 제 값을 한다. 그러다가 때가되어 벗겨지면 그 순간 문자 그대로 무용지물이 되어 잊혀지고 버려진다.
잔칫상 한 모퉁이, 무심(無心)으로 던져진 소줏병 뚜껑을 손에 들고 가만히 들여다 본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소줏병 뚜껑은 말이 없다.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그럴까? 그것 참! 그러고 보면 과연 그렇구나. 내 생전에 단 한번도 '침묵'과 술판'이 공존하는 걸 본적이 없다. 술과 침묵은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원수지간인가? 말없이 소리없이 맑은 술에 몸을 적시며 앉아있는 사람들 모습을 그려본다. 언떤 성스러운 기운이 그 자리를 맴돌 것 같다. 술 마시는 일도 수행(修行)의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터인데........아쉽다.
억지로 말을 걸어본다.
"내가 너를 병뚜껑이라고 불러도 되겠느냐?"
"........."
"아니면, 병뚜겅이었다가 방금 쓰레기로 된 물건이라고 부를까?"
"........."
".........?"
"자네가 나를 무슨 '이름'으로 부르든 그것은 내가 아닐세. 그러니, 아무렇게나 자네 편하도록 부르시게. 상관없는 일이니........."
"버림받은 느낌이 어떠냐?"
"누가 나를 버렸는지 그건 모를 일이나, 나는 버림받지 않았다네. 아무도 내 허락없이는 나를 버릴수 없거든."
"어째서?"
"누군가 나를 버려도 그것은 그에게 일어난 일이지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네. 그의 '버림'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 한, 나는 버림받지 않는다네."
"그러나 지금 당장이라도 내가 너를 쓰레기통에 넣으면 너는 쓰레기로 되는 것 아닌가?"
"비록 쓰레기통에 던져져도 내가 나를 지키는 한 나는 버림받은 몸이 아닐세. 자네는 절대로 나를 버릴수 없어. 왜냐하면 그것을 내가 허용하지 않으니까. 자네는 나를 다른 공간에 옮기거나 밟아서 납짝코로 만들 수 있지만 고작 그뿐일세. 그래서 나는 자네가 조금도 겁니지 않아. 예수님도, 육신을 죽일 수 있을 뿐인 자를 겁내지 말라고 하셨지. 내가 정말로 두려워 해야 할 대상은 나의 겉모양과 함께 그것을 있게 한 실체까지 지옥불에 던질 수 있는 자인데, 그가 누구겠나? 바로 나일세. 오직 나만이 나를 지옥불에 던질 수 있다네. 염라대왕 할아버지도 내 허락과 협조 없이는 나를 지옥에 보낼 수 없지. 그러니 내가 누구를 무엇을 겁내겠나? "
"이야기가 좀 빗나갔다. 나는 너에게 누구를 겁내고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 버림받은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을 뿐이다."
"내 대답은 버림을 받지 않았거늘 새삼스레 무슨 느낌이 있겠느냐는 것이었네."
"그래도 병 입을 꼭 막고 있다가 비틀려 열리면서 더 이상 '뚜껑'으로서의 할 일을 못하게 되었는데 아무 소감(所感)이 없단 말이냐?"
"뚜껑이란 열리려고 있는 물건일세. 내 이제 바야흐로 나의 소임( 所任)을 완수했거늘 어찌하여 '할 일을 못하게 되었다고 하는가?' 굳이 소감을 묻는다면, 언제나 그랬듯이, 더 바랄 무엇이 없다네. 자족(自足)이지."
만지작거리던 소줏병 뚜껑을 밥상 아래 슬그머니 밀쳐두고 사람들 이야기 속으로 어깨를 넣어본다. 재미 있어 죽겠다는 듯이(?) 웃고 떠들고 여전히 시끄러운데 어째서 나는 이다지도 모든 것이 다만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느껴지는 것일까? 어쩌자고 나는 겨우 한 시간을 참지 못하고 정적(靜寂)을 향해 조갈증(燥渴烝)을 내는 것일까?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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