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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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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38 <物과 나눈 이야기들/민들레교회이야기469 >에서
38. 벌레먹고 병들어 떨어진 감나무 잎
감나무 밑으로 길이 있어, 그리로 걷다 보면 자꾸만 밟히는 것들이 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데 서둘러(?) 낙엽으로 져버린 잎이다.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주워 들고 들여다 본다.
나면서부터 그랬을까? 한쪽 옆이 오그라붙어 아예 펼쳐지지 못했고 그나마 벌레먹은 흔적이 뚫어진 구멍으로 남아있다.
이 잎이 이렇게 된 데는 그럴 만한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겠지만, 햇빛을 받아 윤택한 다른 잎들에 견주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불행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고?"
"안 그러냐?"
"그건 자네 생각일 뿐이지"
"그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느냐? 같은 감나무에 같은 잎으로 피어나서 다른 잎들은 저렇게 번쩍거리며 싱싱한 모습을 뽐내고 있는데 너는 이 모양으로 병신에다가 벌레까지 먹어 일찌감치 낙엽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것을 불행한 모습으로 보는게 잘못이냐?"
"나는 자네 생각일 뿐이라고 했지, 자네의 생각이 잘못이라고는 하지 않아네."
"그말이 그말 아니냐? 내 생각일 뿐이라고 했으니 너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말 아니냐?"
"그렇지. 그런데 그게 왜 자네 생각이 잘못이라는 말과 같은 말로 되는가? 자네 생각도 옳고 내 생각도 옳고, 그럴수는 없는 일인가?"
"........."
"서로 같지 않으면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보는 자네 생각의 버릇이야말로 문젤세. 어려서부터 너무 많은 'o x문제'를 풀다 보니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네만......"
"좋다. 그럼, 너에 대한 네 생각은 어떠냐?"
"나는 지금 매우 영광스럽다네."
"영광스럽다고?"
"그래"
"무엇이 그렇게 영광스러운가?"
"내가 시방 만물의 영장(靈長)을 자처하는 사람과 맞상대로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는가? 이런 영광이 어디 있는가?"
"지금 나를 비꼬고 있는 것이냐?"
"내 비록 병들고 벌레먹어 이렇게 비꼬인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남을 비꼬지는 않는다네. 아니, 비꼬지를 못해.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거든. 나의 무능(無能) 때문에 자네를 이롭게도 못하고 따라서 해롭게도 못하니 그것 또한 고마운 일이지."
"네가 스스로 영광스럽게 여기는 것도 네 생각일 뿐이다."
"물론"
"말이 나온 김에 한가지만 물어보자. 네 몸에 벌레먹은 흔적이 있는데, 벌레가 네 몸을 갉아먹을 때 어떠했느냐?"
"........."
"왜 대답이 없지?"
"그걸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가 없다네. 자네들의 언어는 울타리가 좁은 집 같아."
"아프거나 간지럽지 않았나?"
"........."
"귀찮거나 성가시지 않았나?"
"........."
"밉거나 떨쳐버리고 싶지 않았나?"
"........."
나뭇잎은 끝내 말이 없는데, 어디선가 허공을 울리는 맑은 종처럼, 멀리 아득하게 들려오는 소리.
"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지 않으면 숲이 사라진다."
그대 셍각이 장미라면
그대가 바로 장미원(薔薇園)이다
그대 생각이 가시나무라면
그대는 아궁이 속 땔감이다. (Rumi)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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