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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문패가 보였다.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1752 추천 수 0 2001.12.23 15:13:26
.........
골목의 문패가 보였다.

우리는 만나고자 하면 만날 수 있다.
단지 절망마저 절망해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시를 다 쓰고 죽지 않았기 때문에
보고품에 머리를 파묻고 떨지 않기 때문에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었던 것은

만나고자 하면 만날 수 있는 것들을
만나지 못해 왔던 까닭은
내가 모든 삶에 대하여 절망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눈물 글썽이지 않았기 때문임을
억새가 일렁이는 무등산을 거닐면서
내내 생각하고 또 했다.

목숨이 다한 가을이 서리꽃으로 피어나는
햇겨울 아침, 가을에 죽어버린 나를,
나의 최후의 눈물을 골짝물에 흘려 보내고서
정갈하게 옷 입고 다시 사람 만나러 나가는,
산길을 내려오는 발걸음마다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소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골목이 보였다

그 골목마다 걸린
낯익은 문패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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