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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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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아일보 2000.07.30
[아침을 열며]임의진/사랑을 뿜어내는 부채바람
아무리 여름 복판이라고는 하나 인정사정 없는 불볕 더위가 연일인지라
얼굴마다 고생 주름이 가득 잡혀 안쓰럽다. 맥살이 빠지고 흐물흐물 사
지는 녹아들고 배꼽 언저리로 김이 모락거리고 머리통은 할래발딱대다 결
국 합선 상태에 접어들 지경이다.
그렇다고 복날을 무사히 넘긴 황구처럼 어절씨구 니나노로 늘어져 태평
세월일 수만은 없는 노릇! 하여 이 폭염에도 아랑곳없이 가솔을 책임진
최씨는 연장을 챙겨들고 새벽 어귀를 나섰다. 공사판 모퉁이에 파리를 날
리며 쪼그려 앉아 시원한 막걸리 한잔이라도 얻어 마셨는지…. 밀린 임금
은 받아 쥘 기미가 어떻게 보이는지….
한편 체통을 지키며 사느라 웃통 한번 시원스레 벗지 못하는 저기 빌딩
숲 속의 신사숙녀들도 오늘 더위먹은 얼굴로 고단한 일상의 가속기를 힘
겹게 밟고 있으리라.
그렇다고 궁벽진 시골 동네의 나무 그늘 아래 살고 있는 나라고 하여
매일 신선 놀음을 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 마른 콩밭에 물도 주어야 하고
, 도열병이 오지 않았나 논에도 나가 봐야 하고, 때맞춰 견공 3마리의 밥
도 챙겨줘야 하며, 명색이 목사인지라 예배 시간이 닥치면 앞 뒤 없는 일
장 연설이라도 핏대를 세워야 한다. 더구나 요즘 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는 여름 손님을 종종이 아니라 줄창 받고 있는 형편이다.
바야흐로 여름 휴가철이 아닌가. 다산초당이라는 관광지 옆 마을에 사
는 죄로 나는 유객의 주모 정도로 취급되기 일쑤다. 그 정도까지야 대충
막강 입담과 막강 주량으로 막아온 세월이었는데, 심심한 날 끄적거린 글
들이 밖으로 나돌게 된 이후부터 부러 나를 보겠다고 길을 나선 독자들까
지 생겨 엎친 데 덮친 격이 되고 말았다.
전에는 팬티 한 장으로 가릴 것만 대충 가리고 웃통은 모두 벗어 젖히
고 대자리에 드러누워 침까지 흘려가며 낮잠도 한숨 때리기도 했었지만,
요즘은 누가 갑자기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이다.
엊그제였다. 옷을 못 벗는 대신 중치 막히게 하는 창호지를 모두 뜯어
내고 그 자리에 모기장 그물 천을 떠다가 졸대를 대고 못질로 샅샅이 붙
였다. 그랬더니 날것들은 걸러지고 서늘바람이 숭숭 방안으로, 내 살갗으
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더위와 아주 상관없는 냉방이 된 것은
아니다.
바람의 지지부진을 예상하고 준비한 물건이 있으니 바로 요 ‘부채’렷
다. 선풍기는 집 식구들 쟁탈전에 여간해선 내 차지가 되기 어렵고 나는
부채에 의지하여 복더위를 물리치고 있다.
내 방에는 부채가 2개 놓여 있다. 하나는 지난 단옷날에 이웃 중학교
국어선생님이 동네 사는 제자 편에 선물로 보내오신 부채다. 단옷날 부채
를 선물하는 고유풍습을 기억하게 해주신 고마운 선물이었다.
선물은 무엇이건 각별한 것이어서 더불어 사는 정(情)과 소중히 여기는
경(敬)을 느끼게 한다. 부채질을 할 때마다 선물한 이의 염려하고 아끼
는 마음씨를 기억하게 된다. 여름에는 부채 만한 좋은 선물도 없을 거란
생각이다.
다른 부채 하나는 모악산 시인 박남준형이 무더위를 잘 나라고 보내온
것이다. 직접 그린 그림까지 있어 더위를 날리는 노릇만 하는 게 아니라
볼거리까지 제공하는 부채다. 이들 부채로 나는 꿀잠을 자는 아이에게 부
채질을 해주기도 한다.
‘너희들은 덥거라. 나만은 시원할란다.’ 에어컨을 가동하고 문을 걸
어 닫은 공간에서 여름을 나는 사람들만 사는 게 아니다. 작은 부채 하나
로 여름을 나면서 아이의 더위를 쫓아주는 아버지도 여기 이렇게 살고 있
다. 외갓집을 찾은 손자에게, 또는 병든 이웃집 할매를 향해 부채질을 해
주는 할머니들이 있다. 행성의 존망을 염려하는 거창한 구호까지 거들먹
거릴 것까지도 없고, 일단 에어컨보다는 부채가 백배 천배 더 인간미가
있다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에어컨이 돌아가는 방보다는 모기장을 친 방이 훨씬 사람
사는 정감이 감돈다. 현대인들은 수월하고 화끈한 것에, 시쳇말로 쌈박한
것에 홀려 사느라 진화가 아닌 퇴화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난의 신비
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생명의 자생력만큼은 잃지 말아야 할 터인데…
. 이 더위에 시원한 냉수 같은 부채 바람을 님을 향해 부쳐주는 사람, 그
런 시원한 부채 바람 같은 이웃을 만나고 싶은 바람은 무리한 욕심일까?
임의진(전남 강진 남녘교회 목사·시인)
[아침을 열며]임의진/사랑을 뿜어내는 부채바람
아무리 여름 복판이라고는 하나 인정사정 없는 불볕 더위가 연일인지라
얼굴마다 고생 주름이 가득 잡혀 안쓰럽다. 맥살이 빠지고 흐물흐물 사
지는 녹아들고 배꼽 언저리로 김이 모락거리고 머리통은 할래발딱대다 결
국 합선 상태에 접어들 지경이다.
그렇다고 복날을 무사히 넘긴 황구처럼 어절씨구 니나노로 늘어져 태평
세월일 수만은 없는 노릇! 하여 이 폭염에도 아랑곳없이 가솔을 책임진
최씨는 연장을 챙겨들고 새벽 어귀를 나섰다. 공사판 모퉁이에 파리를 날
리며 쪼그려 앉아 시원한 막걸리 한잔이라도 얻어 마셨는지…. 밀린 임금
은 받아 쥘 기미가 어떻게 보이는지….
한편 체통을 지키며 사느라 웃통 한번 시원스레 벗지 못하는 저기 빌딩
숲 속의 신사숙녀들도 오늘 더위먹은 얼굴로 고단한 일상의 가속기를 힘
겹게 밟고 있으리라.
그렇다고 궁벽진 시골 동네의 나무 그늘 아래 살고 있는 나라고 하여
매일 신선 놀음을 하고 사는 것은 아니다. 마른 콩밭에 물도 주어야 하고
, 도열병이 오지 않았나 논에도 나가 봐야 하고, 때맞춰 견공 3마리의 밥
도 챙겨줘야 하며, 명색이 목사인지라 예배 시간이 닥치면 앞 뒤 없는 일
장 연설이라도 핏대를 세워야 한다. 더구나 요즘 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는 여름 손님을 종종이 아니라 줄창 받고 있는 형편이다.
바야흐로 여름 휴가철이 아닌가. 다산초당이라는 관광지 옆 마을에 사
는 죄로 나는 유객의 주모 정도로 취급되기 일쑤다. 그 정도까지야 대충
막강 입담과 막강 주량으로 막아온 세월이었는데, 심심한 날 끄적거린 글
들이 밖으로 나돌게 된 이후부터 부러 나를 보겠다고 길을 나선 독자들까
지 생겨 엎친 데 덮친 격이 되고 말았다.
전에는 팬티 한 장으로 가릴 것만 대충 가리고 웃통은 모두 벗어 젖히
고 대자리에 드러누워 침까지 흘려가며 낮잠도 한숨 때리기도 했었지만,
요즘은 누가 갑자기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이다.
엊그제였다. 옷을 못 벗는 대신 중치 막히게 하는 창호지를 모두 뜯어
내고 그 자리에 모기장 그물 천을 떠다가 졸대를 대고 못질로 샅샅이 붙
였다. 그랬더니 날것들은 걸러지고 서늘바람이 숭숭 방안으로, 내 살갗으
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더위와 아주 상관없는 냉방이 된 것은
아니다.
바람의 지지부진을 예상하고 준비한 물건이 있으니 바로 요 ‘부채’렷
다. 선풍기는 집 식구들 쟁탈전에 여간해선 내 차지가 되기 어렵고 나는
부채에 의지하여 복더위를 물리치고 있다.
내 방에는 부채가 2개 놓여 있다. 하나는 지난 단옷날에 이웃 중학교
국어선생님이 동네 사는 제자 편에 선물로 보내오신 부채다. 단옷날 부채
를 선물하는 고유풍습을 기억하게 해주신 고마운 선물이었다.
선물은 무엇이건 각별한 것이어서 더불어 사는 정(情)과 소중히 여기는
경(敬)을 느끼게 한다. 부채질을 할 때마다 선물한 이의 염려하고 아끼
는 마음씨를 기억하게 된다. 여름에는 부채 만한 좋은 선물도 없을 거란
생각이다.
다른 부채 하나는 모악산 시인 박남준형이 무더위를 잘 나라고 보내온
것이다. 직접 그린 그림까지 있어 더위를 날리는 노릇만 하는 게 아니라
볼거리까지 제공하는 부채다. 이들 부채로 나는 꿀잠을 자는 아이에게 부
채질을 해주기도 한다.
‘너희들은 덥거라. 나만은 시원할란다.’ 에어컨을 가동하고 문을 걸
어 닫은 공간에서 여름을 나는 사람들만 사는 게 아니다. 작은 부채 하나
로 여름을 나면서 아이의 더위를 쫓아주는 아버지도 여기 이렇게 살고 있
다. 외갓집을 찾은 손자에게, 또는 병든 이웃집 할매를 향해 부채질을 해
주는 할머니들이 있다. 행성의 존망을 염려하는 거창한 구호까지 거들먹
거릴 것까지도 없고, 일단 에어컨보다는 부채가 백배 천배 더 인간미가
있다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에어컨이 돌아가는 방보다는 모기장을 친 방이 훨씬 사람
사는 정감이 감돈다. 현대인들은 수월하고 화끈한 것에, 시쳇말로 쌈박한
것에 홀려 사느라 진화가 아닌 퇴화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난의 신비
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생명의 자생력만큼은 잃지 말아야 할 터인데…
. 이 더위에 시원한 냉수 같은 부채 바람을 님을 향해 부쳐주는 사람, 그
런 시원한 부채 바람 같은 이웃을 만나고 싶은 바람은 무리한 욕심일까?
임의진(전남 강진 남녘교회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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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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