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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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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797.일찍 잡은 닭
이필로 속장님 댁 한쪽 편에 서 있는 담배 건조실은 언제부터인가 닭장으로 쓰입니다. 흙벽돌을 높다랗게 쌓아올려 만든, 몇 해를 두고 두고 담배를 말렸던 건조실이 담배 농사를 그만 두면서부터는 닭이나 서너마리 키우는 닭장이 된 것입니다.
정월 보름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겨울 건조실에서 보내느라 닭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어, 밖이 어느 정도 따뜻하기에 속장님이 건조실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어두컴컴한 건조실에서 갇혀 지내던 닭들이 그야말로 신이 나서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밖으로 나온 닭들은 오랜만에 대하는 바깥세상에 취해 정신들이 없었습니다.
속장님이 건너 마을 마실 갔다 집으로 들어설 때였습니다. 저만치 마당에서 모이를 쪼던 수탉 한 마리가 문에 들어서는 속장님을 보더니 반가워서인지 ‘죽겠다고’속장님에게로 달려왔습니다.
아, 그런데 그 순간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뛰어오던 닭아 갑자기 퀙! 하고 마당에 꼬꾸라지더니 숨을 못 쉬는 것이었습니다. 잠깐 사이에 그 덩치 큰 수탉 한 마리가 눈앞에서 나자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저런 저런, 혀를 차던 속장님이 마침 집에 친척 몇 분이 와 있던지라 쓰러진 닭을 잡아 상을 차렸습니다. 닭고기를 먹다 속장님으로부터 닭을 잡게 된 사연을 들은 할머니 한 분이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닭이란 본래부터 요사스러운 데가 있어 흥분을 잘하고, 조금 전처럼 급작스레 달리면 숨이 차 기절하고 말지만, 기절한 놈을 가만 놔두면 얼마 후 다시 깨어난다는 얘기였습니다.
얘길 듣고 보니 속장님은 닭을 너무 일찍 잡은 셈이 되었습니다. 그냥 놔두면 얼마 후 다시 살아날 닭을 그것도 모르고 성급하게 잡아버린 것입니다.
지난해 가을 속장님께 들은 얘기입니다. 그 얘기를 듣고선 나도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러나 웃다 말고 마음 한 구석 은근히 찔려오는데가 있었습니다. 나 또한 성급하게 잡은 닭이 얼마나 많을까 싶었던 것입니다.
다시 한번 되짚지 못하고 성급하게 끊어버린 생각들, 너무 일찍 포기해버린 관계들, 그러고 보면 내 생활 속에서도 일찍 잡은 닭이 적지가 않습니다.
다시 숨 돌아와 깨어날 때까지 그 얼마 동안을 참지 못하고 끓는 물에 닭을 넣은 우리의 조급함과, 그런 조급함으로 뜻하지 않게 죽는 한 생명의 비참함이라니...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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