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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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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2040] 마중물 -독일에서 띄우는 편지
□ 시선
하루는 홍장로님께서 Holiday park를 안내해 주셨다. 아이들이 독일생활 적응하느라 많이 힘들텐데 모처럼 바깥바람을 쐬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배려였다. 마침 전날 저녁 시간을 같이 보냈던 지이네가 동행을 했다. Holiday park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대부분 공휴일을 가족들과 함께 보내려는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더 많아졌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만큼 열기도 뜨거워져 갔다.
곳곳에서 터지는 비명과 고함소리, 사람들은 왜 스스로 나서 공포를 맛보는 걸까. 몇몇 기구를 타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아찔함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것일까.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일 것이다. 어느새 자신의 울타리가 되고 만 일상의 삶을 한순간만이라도 아찔하게 벗어나고 싶은 충동 때문 이리라.
억지로 해야하는 일이라면 영락없이 고문에 가까운 일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은, 자신이 맛볼 공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공포의 한계와 그 결과를 미리 알지 못한다면 어느 누가 보기만 해도 아찔한 그 괴상한 기구에 자신의 몸을 맡기겠는가. 까마득한 세계로 온 몸이 퉁겨 나갈 것 같은 공포를 수반한다 하여도 결국은 안전하며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곧 일상의 시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계를 안다는 것이 한계를 받아들이게 해준다.
무섭다고 빠진 막내 규영이만 빼고 나머지 일행들이 고공으로 올라가는 배를 타러 간 시간, 일행들의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규영이와 길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말이 '배'지 그 또한 아찔한 등정과 추락의 연속, 튀어 오르는 물보라만큼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는 코스였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30여분이 지나도록 일행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일행이 탄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청소를 하는 사람이 지나갔다. 긴 집게를 가지고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나 휴지 등을 치우고 있었다. 물결 흘러가듯 지나가는 사람들을 거슬러 오르며 청소를 하는 사람, 문득 청소 를 하는 사람의 시선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오직 바닥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들 일행을 쳐다보느라 놀이기구를 바라보고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어느 것을 타야 재미있을까, 오직 그런 일에만 마음과 시선을 주고 있는데 청소를 하는 사람만은 그런 일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는 듯 땅바닥만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은 결코 천하고 귀한 것에 관한 문제로 와 닿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나 관심을 갖고 있는 것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함성과 비명과 웃음이 터지는 놀이터 한복판에서 말없이 쓰레기를 줍는 사람은 말해주고 있었다.
지나가는 이들 중에도 나를 웃음으로 쳐다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되었는데, 나는 뜨거운 볕을 가리기 위해 신문으로 접어 만든 삼각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런 모자를 처음 보는 것인지 신문을 접어만든 모자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웃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세상이 아무리 복잡하고 요란하다 하여도 우리는 결국 우리가 관심 있는 것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었다. 2002.6.29 ⓒ한희철 ( 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 시선
하루는 홍장로님께서 Holiday park를 안내해 주셨다. 아이들이 독일생활 적응하느라 많이 힘들텐데 모처럼 바깥바람을 쐬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배려였다. 마침 전날 저녁 시간을 같이 보냈던 지이네가 동행을 했다. Holiday park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대부분 공휴일을 가족들과 함께 보내려는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더 많아졌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만큼 열기도 뜨거워져 갔다.
곳곳에서 터지는 비명과 고함소리, 사람들은 왜 스스로 나서 공포를 맛보는 걸까. 몇몇 기구를 타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아찔함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 것일까.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일 것이다. 어느새 자신의 울타리가 되고 만 일상의 삶을 한순간만이라도 아찔하게 벗어나고 싶은 충동 때문 이리라.
억지로 해야하는 일이라면 영락없이 고문에 가까운 일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은, 자신이 맛볼 공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공포의 한계와 그 결과를 미리 알지 못한다면 어느 누가 보기만 해도 아찔한 그 괴상한 기구에 자신의 몸을 맡기겠는가. 까마득한 세계로 온 몸이 퉁겨 나갈 것 같은 공포를 수반한다 하여도 결국은 안전하며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곧 일상의 시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계를 안다는 것이 한계를 받아들이게 해준다.
무섭다고 빠진 막내 규영이만 빼고 나머지 일행들이 고공으로 올라가는 배를 타러 간 시간, 일행들의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규영이와 길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말이 '배'지 그 또한 아찔한 등정과 추락의 연속, 튀어 오르는 물보라만큼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는 코스였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30여분이 지나도록 일행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일행이 탄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청소를 하는 사람이 지나갔다. 긴 집게를 가지고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나 휴지 등을 치우고 있었다. 물결 흘러가듯 지나가는 사람들을 거슬러 오르며 청소를 하는 사람, 문득 청소 를 하는 사람의 시선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오직 바닥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들 일행을 쳐다보느라 놀이기구를 바라보고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어느 것을 타야 재미있을까, 오직 그런 일에만 마음과 시선을 주고 있는데 청소를 하는 사람만은 그런 일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는 듯 땅바닥만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은 결코 천하고 귀한 것에 관한 문제로 와 닿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나 관심을 갖고 있는 것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함성과 비명과 웃음이 터지는 놀이터 한복판에서 말없이 쓰레기를 줍는 사람은 말해주고 있었다.
지나가는 이들 중에도 나를 웃음으로 쳐다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되었는데, 나는 뜨거운 볕을 가리기 위해 신문으로 접어 만든 삼각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런 모자를 처음 보는 것인지 신문을 접어만든 모자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웃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세상이 아무리 복잡하고 요란하다 하여도 우리는 결국 우리가 관심 있는 것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었다. 2002.6.29 ⓒ한희철 ( 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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