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397.시골장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65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

□한희철397.시골장


이곳 단강에서 가장 가까운 장은 부론장입니다. 단강에서 20리 떨어진 부론에 1일과 6일 그러니까 5일장인 부론장이 아직껏 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나가보면 말이 장이지 벌어진 모습은 장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빈약하고 초라한 모습입니다.
옹기종기 한눈에도 셀 수 있는 적은 사람이 몇 가지 물건을 펼쳐놓았을 뿐입니다. 옷가지, 신발, 그릇 등 물건 또한 색다른 것이 아닙니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어울려 북적대야 그게 장이고 그런 장이래야 장다운 흥이 있는 법인데 부론장에는 어디에도 그런 구석이 없습니다. 돈이 아쉬운 인근의 사람들이 약간의 곡식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 고작, 장은 정오경 파하기 일쑤입니다.
동네 노인들게 물으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답니다. 부론장에는 부론면 사람들 뿐 아니라 강 건너의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삼합리 사람들, 충북 중원군 앙성면 단암리 사람들, 3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장날이면 부론이 들썩거렸습니다.
꼭 물건을 팔고 살 일이 없어도 사람들 북적댐이 좋아 바쁜 일 젖혀두고도 부론장에 나와 보길 좋아했다고 합니다. 장을 더욱 세우기 위해 7월 백중날이 되면 신명나는 판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씨름판, 윷판, 농악대회, 줄다리기 등은 멀리서 광대며 남사당패를 불러와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도 했던 것입니다. 아직도 노인들의 기억 속엔 그때 그 모습이 요란한 농악 소리와 함께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저 불 사그라들 듯 썰렁해진 장 모습이라니,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헤아리며 아픈 마음을 어쩌지 못합니다.

엊그제 부론장을 찾았을 때 난 멍하니 서서 온통 내 시선을,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늘 그랬듯 장은 초라한 모습 그대로였지만 날 사로잡은 건 길가 나란히 늘어선 은행나무들이었습니다. 노란 은행잎들이 빈틈없이 물들어 눈부시도록 빛나고 있었습니다.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새떼의 날개짓처럼, 맘껏 축하받을 사람에게 쏟아진 꽃다발처럼, 커다란 합창처럼, 아니 어떤 비유도 거부하는 몸짓으로 은행잎은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꼭 텅 빈 장을 위로하기 위한, 사라진 사람들의 만남을 감싸 안으려는 따뜻한 품으로 보였습니다. 불현 듯 그 안으로 미친 듯이 달리고 싶은, 그러다가 풀썩 쓰러지고 싶은 왠지 모를 충동을 달래느라 난 한동안, 정말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1991)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45 한희철 426.썩은 세상 한희철 2002-01-02 4367
544 한희철 425.객토작업 한희철 2002-01-02 4354
543 한희철 424.쉬운 삶 한희철 2002-01-02 4386
542 한희철 423.엄마 젖 한희철 2002-01-02 4391
541 한희철 422.직행버스 한희철 2002-01-02 4355
540 한희철 421.용서하라 한희철 2002-01-02 4382
539 한희철 420.떠 넘기기 한희철 2002-01-02 4366
538 한희철 419.어떤 축구 선수 한희철 2002-01-02 4337
537 한희철 418.오늘도 해는 한희철 2002-01-02 4429
536 한희철 417.사랑의 안마 한희철 2002-01-02 4388
535 한희철 416.되살이 한희철 2002-01-02 4364
534 한희철 415.그나마 한희철 2002-01-02 4359
533 한희철 414.지팡이 한희철 2002-01-02 4343
532 한희철 413.소나기 한희철 2002-01-02 4371
531 한희철 412.공부방 한희철 2002-01-02 4370
530 한희철 411.거리에서 한희철 2002-01-02 4370
529 한희철 410.들꽃 한희철 2002-01-02 4362
528 한희철 409.은희네 소 한희철 2002-01-02 4421
527 한희철 408.들판이 텅 비었다 한희철 2002-01-02 4345
526 한희철 407.우리 엄마 한희철 2002-01-02 4394
525 한희철 406.용서하소서 한희철 2002-01-02 4357
524 한희철 405.산 한희철 2002-01-02 4384
523 한희철 404.어떤 화가 한희철 2002-01-02 4470
522 한희철 403.좋은 기다림 한희철 2002-01-02 4418
521 한희철 402.변소 한희철 2002-01-02 4376
520 한희철 401.김장 한희철 2002-01-02 4336
519 한희철 400.새벽 제단 한희철 2002-01-02 4355
518 한희철 399.도사견과 교회 한희철 2002-01-02 4350
517 한희철 398.가장 좋은 설교 한희철 2002-01-02 4371
» 한희철 397.시골장 한희철 2002-01-02 4365
515 한희철 396.무너지는 고향 한희철 2002-01-02 4390
514 한희철 395.낯선 객 한희철 2002-01-02 4359
513 한희철 394.제 각각 세상 한희철 2002-01-02 4350
512 한희철 393.지도 한희철 2002-01-02 4349
511 한희철 392.미더운 친구 한희철 2002-01-02 4354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