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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4. 두 선생님과의 만남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44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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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354. 두 선생님과의 만남

 

1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다. 김정권 형과 함께 봉화에 사시는 전우익님을 만나러 나선날, 찬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때마침 같은 책(혼자만 잘살은 무슨 재민겨,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을 같은 때에 읽고 한번 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같았는데, 뭐 미룰거 있겠냐며 어느날 아침 길을 나섰다. 아침 일찍 원주에서 정권형을 만나 간단히 식사를 하고선 길을 나섰다. 

봉화는 안동 옆에 있었다. 언젠가 여행중에 안동을 들린적이 있고 그때 안동이 꽤 먼 곳으로 남아 있어 봉화 또한 먼 곳으로 생각하고 떠났는데 막상 가보니 그리 먼 길이 아니었다. 

전우익 선생님이 살고있는 마을은 제대로 지어진 한옥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마을이었다. 

그 좋은 한옥들이 제대로 손볼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아 빛바랜 흑백 사진처럼 점점 퇴락해 가고 있었다. 

마을 한쪽 구석집. 마을 사람이 가르쳐 준 집이 잘못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전선생님의 집은 빈집 같아 보였다. 

몇 번을 불러서야 선생님이 나오셨는데 마침 아궁이에 불을 피우던 중이었다. 영락없는 시골 할아버지, 저런 외모에서 빛나는 정신들이 맑은 글로 솟았던가 싶다가도 그러기에 가능한 일이구나 싶기도 했다. 

사랑방으로 들어가 마주 앉았다. 사랑방은 앉을 틈이 없을 만큼 온갖 잡다한 것들이 널려 있었다. 책속에 나온대로 온갖 나무들을 가져 다가 속을 파내어 연필꽂이 등을 만들고 있었다. 윗방에 가 사과를 가져다 주셨는데 쟁반도 없이 방바닥에서 사과를 깎게 되었다. “제가 하겠습니다”하고 칼을 받으니 칼은 다름아닌 연필 깎는 칼이었다. 그것도 어릴적 국민학교 다닐때 썼던, 반으로 접는 그 작은 칼.  

그런 모든 일들이 그분의 삶하고 전혀 낯설지를 않아 ‘자연스러움’ 그대로였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정호경 신부님을 만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까운 곳에 정 신부님이 살고 계시다 는 것이었다. 

 

2

밖으로 나와 대문 쪽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정권형이 소리를 쳤다.

 “불이다!” 

놀라 달려가 보니 이게 웬일인가. 안채 방안에 불질이 가득 한 게 아닌가. 마침 안채를 구경할 겸 마당으로 들어섰던 정권형이 불을 본 것이었다. 언제 붙었는지 모를 불이 정말 겁나게 타오르고 있었다. 

불길이 하도 거세 이미 손을 쓰기에는 늦어 보였다. 집 자체가 나무로 된 데다 오래된 집. 그야말로 싯누런 불길이 말그대로 훨훨훨훨 타오르고 있었다. 

얼른 마루에 있는 전기 차단기를 내리고 물을 찾아 뿌리기를 시작했다. 정권형과 전선생님 그리고 나 세 사람은 정신이 나갈 정도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불길을 잡으려 애를 썼다. 

하필이면 샘이 바깥 저만치 떨어진 곳에 있어 그곳을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정신없이 물을 부어댔다. 

처음 불을 봤을 때만 해도 도저히 우리 손으로는 잡힐 불이 아니다 싶었는데 다행히 불길이 잦아들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안방 구들이 약해진 채 틈이 나 있어 그 사이로 아궁이 불이 번져 들어왔던 것이었다. 이불은 물론 방안에 있던 온갖 것들이 다 불타고 말았다. 

아마 아끼시는 그림과 책들도 제법 있었을 텐데 모두 타버리고 말았다. 

아궁이를 수선해야겠다고 몇 번 마음을 먹었으면서도 경고를 무시했더니 결국은 일을 당했다며 타 없어진 것보다는 남아 있는 집을 다행스럽게 여가셨다. 

하기야 불길을 못 잡으면 집 전체는 물론 바로 뒤에 붙은 산으로도 불이 번져 정말 큰 일이 날뻔했다. 일찍 집을 나섰으면 불이 붙은 줄도 모르고 나갈뻔했고 얘기가 더 길어졌더라면 불길이 우리 손을 벗어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괜히 우리가 방문하여 그런 일이 일어난 것 같아 죄스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함께 불길을 잡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도 컸다. 

그 큰 난리를 치르고서도 표정이나 마음의 흔들림이 없는 전선생님 모습 다시 한번 인상적이었다.

 

3

정신부님 만나는 일은 다음으로 미루자 했지만 전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집을 나서며 길을 안내했다. 

청량산 입구의 허허벌판, 거기 나무로 지은 집이 있었고 정신부님은 거기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정신부님 역시 더없이 허름한옷, 몸이 껍데기일 진대 하물며 옷이랴 싶게 신부님 또한 아무것으로도 자산을 꾸미고 있지 않았다. 

항아리를 구경시켜 주어 보았더니 뭔지 모를 것이 가득 담겨 있었다. ‘토착미생물’이었다. 

논과 흙에서 채취한 미생물을 잘 배양하여 봄이 오면 논밭으로 뿌린다는 것이었다. 죽은땅을 살려내는 일을 그 외진 곳에서 신부님은 묵묵히 해 나가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나무로 된 집도 신부님이 직접지은 집이었다. 

“성당 일을 보시는 사목 활동은 따로 안 하십니까!” 궁금하여 여쭸더니 “제겐 농토가 제단이지요.”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분명하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누가 넥타이 매고 책상에 앉아 그 얘기를 했다면 난 말장난쯤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신부님의 그 말은 삶에서 배어나온 말이었다. 

농토가 제단이란 말은 큰 울림으로, 채찍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는 많은 경우 제단을 여배당 안에만 모셔놓고 살지 않는가. 

분명한 흐름, 자신의 몫을 저리도 분명하게 알고 다른 것 잊고 가는 그 모습이 너무 귀했다. 어둘녘 돌아오며 정권형과 하루 일을 이야기했다.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탄식과 부끄러움으로.  (얘기마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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