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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1. 이 땅의 할머니들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385 추천 수 0 2002.01.02 21: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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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1241. 이 땅의 할머니들

 

볕이 뜨거운 오후, 동네 할머니 한 분이 호미와 조그만 그릇을 들고 밭에서 돌아온다. 어기적 어기적 걷는 모습에 힘이 하나도 없다. 허금 할머니였다.

며칠 전 병원에 나가 정밀진단을 받기로 예약을 하고 왔고 바로 그날이 검사 받기 전날, 검사를 위해 금식을 하며 죽을 먹으라 한 날이었다. 

“아니, 할머니, 아무것도 못 드셨는데 일을 하면 어떻게 해요.” 걱정도 되고, 괜히 화도 나 말씀드렸더니 “글쎄 우리 영감 혼자 밭을 매니 으특케 혼자 가만있을 수 있어. 매다 매다 어지러워 그냥 들어오는 거여”

 

 비가 제법 내리는 아침. 차를 타고 신작로께로 나갔는데 마침 9시 버스가 섰고, 버스에서 누가 내리는데 보니 허석분 할머니다. 크고 작은 짐보따리 서너개를 들고 메었다. 

짐을 차에 받아 싣고 차를 돌려 작실까지 모셔다 드렸다. 무게가 여간이 아니었다. 

“이 아침에 어딜 다녀오세요?” 그러자 할머니는 멋적은 듯 혼자 껄껄 웃으시며 “장에 가다가 그냥 와유, 여주장에 갈려구 나섰는데 흥호리에 가니까 비가 막 쏟아 붓잖아유.” 

지난겨울, 미끄러운 길에 넘어져 팔목에 금이 갔던 할머니. 예배를 마치고 악수를 나눌때면 지금까지도 손이 아파 찡그리면서도 그 무거운 짐을 해 들고 여주장 길을 나설 생각을 하셨다니, 이 땅의 할머니들. 당신의 삶을 그 무엇이 가로막아도 그저 한결같이 당신 길 갈 뿐인 이 땅의 할머니들. (얘기마을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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